사나다 슌페이x나루미야 메이

 

 

“야구. 재미없게 하는 것 같아.”

“하하.”

“근성도 없어 보여.”

“하하.”

“완전 늙은 사람 같다고.”

“하하.”

“웃기만 하네. 진~짜~ 짜증난다, 너!”

꼿꼿하게 선 나루미야의 날카로운 손끝이 사나다의 시야를 정확하게 양분했다. 헌데 사나다는 갑작스러운 움직임에도 놀라는 기색이 하나 없고, 그저 고개만 살짝 뒤로 빼고 나서 한쪽 눈썹을 쭉 잡아당겨 올린다. 사실은 남중고도에 오른 태양이 아래로 드리운 손가락의 그림자가 그의 시야를 가린 것이다. 중력을 따라 흘러내리는 그림자를 빠르지 않게 훑는다. 그의 고개는 한참동안 나루미야의 스파이크 쪽을 향하다가 다시 운동장을 향한다. 나루미야의 생각 이상으로 단조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나다는 여전히 양손으로 난간을 짚은 채 발끝만 움직였다. 꺼끌꺼끌하게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모래소리에 나루미야의 표정이 구겨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때, 사나다는 난간을 짚고 있던 손을 올리고 나서 입을 가려 웃는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짧고 단단한 소리를 터뜨리면서.

“기분 나쁜 타이밍에 웃기까지 해.”

“기분 나쁘라고 웃은 건 아닌데. 미안.”

“뭐 됐어. 잠깐이니까.”

삼십분이 훌쩍 넘게 앉아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실, 같이 앉아있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것이었다. 한 두 마디 이어지던 말은 한쪽의 무성의한 반응으로 쉽사리 끝을 맺었다. 나루미야가 일어서는 것으로 꽤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도 두 사람의 사이에서만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화라고 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상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같이’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나루미야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기까지에 이르렀다. 사실 그의 인내로라면 이미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참은 셈이다. 시효가 전부 끝나고 기어이 짐승처럼 그르릉 목청을 울리는 소리로 위협 하는가 싶더니 금방 고개를 돌리고 만다.

“너랑 노는 건 재미없다. 간다.”

일어선지는 조금 시간이 지나 굳이 털어낼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쫙 편 손으로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탈탈 털어내고 나서 껑충 뛰어 계단에 내려선다. 나루미야는, 손가락을 거둔 후 부터는 사나다를 쳐다보지 않았는데 반대로 사나다는 그제야 운동장을 향해 곧게 뻗었던 고개를 움직였다. 반쯤 감겨있던 눈꺼풀이 빠르게 깜빡인다.

“가지마.”

“뭐라고?”

“좀 더 있다가 가.”

“너 진짜 별로야. 생각 이상으로 재미가 없다니까?”

질색하는 표정으로 사나다를 뒤돌아보던 나루미야는 까딱까딱 움직이는 사나다의 손에, 그러나 망설임 없이 다가선다. ‘왜.’ 하지만 여전히 어떤 것도 건넬 것 같지 않은 사나다는 금방 높은 고도에서 쏟아지는 태양을 따라 고개를 푹 숙인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떠날 것 같던 나루미야는 이제 다시 사나다 앞에 섰다. 그리고는 이글이글 열기를 뿜어내는 바닥에 풀썩 쪼그리고 앉더니 조금 높은 사나다를 올려다본다. 목 뒤로만 조금 흐른 것 같던 땀이 금세 송글송글 이마, 뺨, 코에 맺힌다. 마치 마운드에서 난타를 당하기 직전의 그 얼굴이다.

“사나다는 더위에 엄청 약하고만. 수건 챙겨서 다녀.”

“조금? 나루미야, 잠깐만 이쪽으로 와봐.”

“왜?”

사실 대답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 선 나루미야는 쉬이 걸음을 옮겼다. 고작 한 발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게다가 사나다와는 반대로 여름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러놓고는 부동으로 한참동안 고개를 들지 않으니, 나루미야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짜증을 담은 목소리로 “왜!”하고 소리쳤다. 그제야 무겁게 구부러져 있던 고개가 들리고 소곤소곤 말을 건넬 것 같던 사나다가 돌연, 우악스러운 힘으로 나루미야의 유니폼을 잡아당겨 제 얼굴을 잔뜩 부빈다. ‘으악’하는 탄성 외에 다른 대처를 할 틈도 없이 휘청댔다가 겨우 사나다의 머리를 짚었다. 덕분에 고개가 더욱 푹 땅에 가깝게 내려앉은 사나다는 온 몸을 떨어 웃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 밑으로 풀럭, 조금 젖어버린 나루미야의 유니폼이 내려 쏟아진다. 허탈한 표정으로 유니폼 아랫단을 잡아 올리고 쳐다보던 나루미야는 “어이, 고개 좀 들어 보시지.”하고 다시 한 번 으르렁거린다. 이번에는 사나다가 순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겨우 누르고 있는 사람 마냥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내젓는 사나다를 내려 보며 일말의 동정심을 떠올렸던 나루미야가 금방 적의를 드러낸다.

“..죽인다!!”

“절대 놀리는 건 아니었어. 사실 나루미야한테는 베이비파우더라거나, 그런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이제까지 보였던 자잘한 움직임을 모두 멈춘 채로 턱을 괴로 조금 더 진지한 얼굴이 되어 나루미야를 올려다본다. 쏟아지는 햇볕에도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럼 무슨 냄새가 나는데? 라고 해봤자 땀 냄새지.”

“음. 에이스의 향기? 하하하하.”

“이거 농담이면 너랑 말도 안 섞을 거야.”

“진짠데. 나루미야, 멋있어~”

여전히 반대로 오르내리는 눈썹 탓에 도대체가 장난인지 진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있는 미소를 짓는다. 눈가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떨어지기 전에 결코 눈을 깜빡이지 않을 것처럼 곧게 쳐다보면서. 그런 사나다의 여유에 나루미야도 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편다.

“난 에이스니까.”

“에이스지, 나루미야 메이.”

반사적으로 나루미야의 이름을 곱씹은 것 같은 사나다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대화가 뚝 끊어진다. 시간을 집어삼킨 것처럼 서로 아무 느낌도 주고받지 않는다. 역시 지루하다. 지지부진한 대화속도에 견디다 못한 나루미야가 기어이 몸을 비튼다. 아까 잡혔던 손가락을, 이번에는 구부려서 콕콕 사나다의 눈앞을 위협한다. 그리고 손가락이 아닌 나루미야의 얼굴만을 곧게 쳐다보고 있던 사나다는 다시 한 번 자신을 곧게 노린 손가락을 잡아챘다. 그러고 나서는, 온 얼굴을 구겨가며 미소 짓는다. 눈썹은 잔뜩 곤란하고, 입술은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 휜다. 그리고 유난히 짧은 나루미야의 검지손톱을 제 엄지로 부드럽게 쓸어낸다.

“난 나루미야랑 있으면 재밌어.”

이미 굳은살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손끝에는 사나다의 스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루미야는 마치 예민한 감각이 살갗을 파고들었을 때처럼 곧바로 손가락을 움츠렸다. 재미없다는 표정에, 영 거슬린다는 몸짓까지 더했다. 혼자 고개를 잘게 가로젓기를 반복하더니 나서 제 손가락을 잡았던 사나다의 손을 털어낸다. 그제야 사나다의 미간이 조금 불편하게 찌푸려진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다시 예의 그 ‘생각보다 재미없는’표정으로 돌아간 사나다와 눈싸움을 하던 나루미야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방, 인심 썼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쫙 편 손바닥으로 그의 머리를 톡 친다.

“별로야. 나는 재미없어. 그럼 진짜로 간다, 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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