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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2  [토도마키] 타이밍

토도 진파치x 마키시마 유스케

for ziso / 캐붕 죄송ㅋ.............ㅠㅠ

 

 

토도가 찾아왔다. 그가 소호쿠를 찾는 것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었으나 웬일로 높은 산행을 하면서 그는 빈손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두 발은 올곧게 지면을 딛고 있었다. 정확히는, 팔짱을 끼고 짝 다리를 짚은 바람에 비탈 반대쪽으로 몸이 조금 기울기는 했다. 그렇게 마키쨩의 언덕이라고 부르며 마음에 들어 하던 소호쿠 후문의 언덕을 자전거 없이 오른 것이다토도 진파치 자체는 이제 구경거리가 아니었으나, 그에게 자전거가 없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사실인지 오노다, 나루코 뿐만이 아니라 이마이즈미도 갈 길을 잠시 멈춘 상태도 그를 한번 돌아봤다. 벌써 십오 분 째 같은 자리다. 이마이즈미는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떠날 것 같지만 토도와 똑같은 포즈로, 그러나 양 다리를 곧게 뻗고 선 나루코와 오노다에게서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성원을 보내는 로드위의 관중들로부터의 시선과 다르게 소호쿠들로부터의 시선은, 어쩐지 그가 조금 동물원의 코끼리가 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렇기에 토도는 귀찮은 듯한 얼굴로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구경하지 말고 갈 길 가!”

이제 소호쿠 교복만 입혀놓으면 딱이겠구먼. 전학 안하시는감?”

토도상이 소호쿠 교복을요?! 하지만 그렇다면 하코네의 클라이머는.”

아니지 오노다. 그런 것이 아니여. 저 형님은 마키시마상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구먼. 을매나 드나들었는가 남의 학교 후문 닳것다,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이여.”

“-거기다가 매번 스타팅 포인트를 밟고 있어.”

얌전히 지나갈 것 같았던 이마이즈미의 말에 결국 토도가 참지 않고 한 마디를 할을 것 같은 얼굴로 세 사람을 홱 쳐다보았는데, 다행히 토도의 가벼운 분노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왜냐하면 때맞추어 마키시마의 길쭉한 손가락이 토도의 어깨를 짚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잡혀있는 거니, 너는.”

아엇, 마키쨩!”

마치 이러한 그림을 예상했다는 듯한, 그러나 조금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환영에는 조금 먼 듯한 마키시마의 표정에도, 토도의 얼굴에는 거짓말처럼 화색이 돌았다. 물론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원래 토도의 것이기는 했으나 좀 전에 비하면 굉장한 변화였기에 그 둘을 제외한 세 사람은 이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마이즈미가 끼어있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사실이었으나 마키시마의 등장 이후로 그들에게 토도의 관심은 조금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그들을 등지지 않은 마키시마의 몫이다. ‘별로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그런 마키시마의 작은 소망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마치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걸으려면 한참이니 일단 내려가자.”

오케이. 식사부터 해결하자. 나 마키쨩 만나러 오느라 점심 패스했는데, 밥 살 거지? 점심이라면 역시 정식?”

포도만 아니면 뭐든.”

하하하.”

체념한 듯 툭 뱉은 농담 같은 말에 토도가 크게 웃었다. 이미 그는 오노다, 이마이즈미, 나루코의 존재를 잊은 듯 하다. 웃겨 웃는다기보다는 신나는 기분이 역력히 드러난 토도를 보면서 나루코가 고개를 저었다.

밥 먹을라고 하코네에서부터 왔단가. 데이트네, 데이트여.”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데이트란 사실 조금 다르다. 토도가 으레 찾아오고, 두 사람이 함께 달리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관계가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

 

그래서, 살 것은 정했니?”

아니. 아직.”

입에 물린 사탕을 깨물어 부수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마키시마의 말을 조금 건성으로 흘려듣는 토도를 쳐다보는 바람에 안 그래도 느린 걸음의 마키시마는 금세 뒤쳐졌다. 불러서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행동이 틀어져버렸다. 그저 손만 작게 손짓해 버린 탓에, 토도는 마키시마가 자신에 나란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거리는 조금 멀다. 사실 마키시마가 토도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것은 그의 입 안에도 역시 같은 사탕이 물려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앞서 걷는 토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볼을 긁적인 마키시마는 언제 따라잡아야 할까 타이밍을 잴 뿐이다. 사실 온통 자신에게 쏠려있던 토도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분산 된 지금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틈이다. 그것이 조금의 안도와 조금의 싱숭생숭함으로 마키시마에게 내려앉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을 한 마키시마는 자신의 입안에 있는 것이 그렇게 질색하던 포도향 사탕이라는 것을 잊었다. 조금 전 기쁜 얼굴로 건넨 사탕이라는 사실이, 마키시마에겐 전부다.

밥 먹을 때 생각한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네.”

아니야. 생각은 좀 했어. 먹을 건 노, 패션 노, 책은 안 읽을 테니 패스. 그래서 그냥 잡화 중에 고르는 게 좋겠거든. 캰도우*로 갈 거야.”

그래서 정말로 크게 한 걸음이 차이가 날 정도가 되자 마키시마가 입을 열었는데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하나하나 손가락을 접아 짚어주던 토도가 갑자기 크게 몸을 돌렸다. 방금까지 심드렁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변한다. 이를 드러내고 찡긋 웃는 그 얼굴이 유난히 쾌활해 보일 정도로, 그는 들뜬 움직임에 커다란 목소리 까지 더했다. 갑작스러운 온도변화에 마키시마는 나른하게 뜨고 있던 눈꺼풀을 빠르게 세 번 깜빡였다. 지금의 토도는, 아까까지의 대외용 토도, 그러니까 즐겁지만 냉철하게 중심이 잡혀있는 평소의 그와는 다르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사람 냄새가 것 같이 따뜻한 온도가 얹혔다. 얼음장같이 차진 않지만 늘 서늘하던 기운이 순식간에 걷혔다. 사실 그는 간혹 그럴 뿐이었다. 장난스러운 것인가 혹은 쾌활한 것인가 싶어도 그의 온도는 항상 찼다. 그런 토도에게 온기가 도는 순간은 생각보다 드물고, 생각보다 짧았다. 마키시마는 오랜만에 본 토도의 열이 아닌 온기에 눈썹을 휘고 미소 지었다.

조악한 게 많겠지만 의외로 보물창고 같은 곳이거든. 마키쨩은 아마 한 번도 안 가봤을 것 같네, 하하.”

누나와 정말로 사이가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와 똑같이 생겼다고 수도 없이 들어온 그의 누나를 떠올려봤다. 그러나 마키시마의 머릿속에는 온통 토도 진파치 만이 떠오를 뿐이다. 이전과 같게 그 상상은 또 한 번 불발되었다.

캰도우 라는 것. 지나치지 않으려면 지금 멈춰, 토도.”

 

*

 

토도가 미리 예고했던 대로 캰도우에는 온갖 조악한 것들이 많았다. 얼핏 보기에는 꽤 눈길을 끌 만한 것들이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아무래도 백화점에서 보던 것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명문가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쇼핑이라는 취미가 없었으니 물건으로 가득 찬 장소가 낯설었던 마키시마는 팔짱을 끼고 그것들을 건성으로 둘러보다가 이윽고 자세히 살피기에 이르렀다. 토도의 말을 빌리자면 후지다’라고 할 만한 물건들이 생각보다 마키시마의 눈을 끌었던 탓에 토도가 살 것을 계산대 위에 올리고 나서까지 그는 한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에는 로손*으로 가자. 의외로 그런 곳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던데, 마키쨩.”

기껏 백엔을 더 지불하고 포장에 리본까지 달아 왔는데 열어보지도 않고서 나중에 볼 테니 풀어서 찬장에 두라는 오더를 내린 토도의 누나는 과연, 정말 진파치와 판박이로 닮아있었다. 얼굴 뿐 만이 아니라 성격까지 똑같다. 토도는 마치 그런 그녀를 예상이라도 한 듯 서운한 기색도 없이 포장지를 풀어헤쳤고 둘 곳을 확보하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 찬장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무뚝뚝하고 짧은 생일축하를 지켜보던 마키시마는 영 알기 어렵다는 얼굴로 토도의 의자를 붙잡았다. 좀 전까지는 정말 각별한 남매사이인 것으로 보였는데 마키시마가 상상했던 것과 두 사람의 태도는 너무나도 달랐다.

조금 정신없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으니까.”

하하하. 어때, 그래도 이 정도면 득템 한 거 맞지?”

토도는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컵을 다시금 쨘 내밀며 마키시마를 내려다보았다. 누나의 선물임에도 그녀와는 상관없는 물건처럼, 그저 제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에 만족해하며 호쾌한 웃음소리를 낸다. 큰 뿔이 달린 사슴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컵을 자랑스럽게 내밀기 위해 몸을 움직인 토도에 대한 반동으로, 의자가 덜컹 흔들린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진파치. 조금 신경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심하렴.”

그 대신 걱정 가득한 얼굴의 마키시마가 그를 올려다봤다.

. 걱정 마. 이 정도 높이에는 흔들림 없, 으악?!”

위험해!!”

높은 곳이라면 오히려 자신만만하다던 토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의 낙하는 아차 하는 사이였다. 깜짝 놀란 마키시마가 느슨하게 잡고 있던 의자를 뿌리치고 쏟아지는 토도의 몸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마키시마의 순발력 덕에 바닥에 내팽개쳐 진 것은 덜커덩 날아가 버린 의자 뿐 이었다. 다만 토도를 받아낸 마키시마의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는 의자와 같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키쨩!! 괜찮아?”

부러지진않은 것 같아.”

고통이 제법인지 잔뜩 찡그린 얼굴의 마키시마의 얼굴을 살피는 토도의 안색이 창백하다. 그는 으아으.’하는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떨어뜨리지 않은 컵을 손에 꽉 쥐고 안절부절 하는 얼굴로 눈을 껌뻑인다. 매끄럽고 거침 없던 그의 입술도, 자신만만하게 힘이 들어가 있던 그의 눈매도, 지금은 전혀 떠올리기 힘들 정도다. 그의 얼굴은 유통기한이 지난 샌드위치처럼 잔뜩 눌려있으며 핏기 없이 파리하다. 사실 토도의 당황하는 얼굴이란 마키시마조차 꽤나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천하의 토도 진파치님의 아연실색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문득 든 실없는 생각에 마키시마는 고통을 잠시 잊고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조심하라고 했잖니.”

나이스캐치 마키쨩.”

여러모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볍게 토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것이 해제의 주문이었는지 그는 곧장 헤헤 웃음소리를 내며 미소 지었다. 다시 온도가 변했다. 유쾌하던 토도의 얼굴이 난처함을 띄웠으나 그것은 또한 미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었다. 휘유 죽을 뻔 했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조차 그러하다. 살풋 오른 미소에는 안도와 상기지금의 토도는 햇살아래 배를 보이고 누운 호랑이와 같았다. 역시 오늘의 토도는 마키시마에게 영 어렵다. 마키시마는 둥그렇게 말아 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토도를 잠시간 쳐다보다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평소의 반사 신경을 고려한다면, 너를 받은 건 기적인 것 같은데.”

마키시마의 웃음은 거품처럼 사그라졌다. 실소가 터지기는 했지만 역시 좀 전은 아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그의 체중으로 엉덩이가 욱신거리기 시작한 탓이다. 이제부터 얌전히 있으라는 가벼운 경고를 하며 토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의 고충도 알지 못한 것인지, 컵을 바닥에 내려놓은 토도가 양 손을 합장하며 맑은 웃음을 띠웠다.

그러게 말이야. 오늘은 특별하니까 마키쨩의 좋은 기운이 지켜준 거지. 하하하핫.”

나의 좋은 기운이라니?”

마키시마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 떴다. 벌써 세 번째다. 군더더기 없이 곧장 전해지던 것이 토도의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헷갈리는 무엇인가를 주렁주렁 단 채로 마키시마에게 전해졌다. 대체 그건 왜일까. 고민할 새도 없이 토도에, 더욱 큰 물음표가 걸렸다.

무슨 소리야. 오늘 네 생일이잖아.”

토도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없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밝게 웃는 얼굴을 하고 양 손으로 마키시마의 얼굴을 감싼 다음 입을 맞췄다.

 

 

 

*캰도우, 로손: 한국의 다*, *샵과 유사한 잡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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