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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3.11.19  [사나아라] 4

프로선수AU (뭔가 덜 쓴것이지만..이어질지는..ㅠ)

사나다 슌페이x아라키 이치로

 

 

 

매끄럽지 않은 호흡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하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챈, 멀게 내야를 보고 있던 사나다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사선으로 야구장 전경을 훑던 사나다의 눈동자가 멈춘 것은 청색 이어폰을 귀에 꽂고 러닝을 하던 아라키와 눈이 맞고 나서다. 평소의 가벼운 표정과는 다르게 꽤나 지친 얼굴로, 흐르는 땀도 닦지 않고 달리던 그가, 자신을 쳐다볼 줄은 몰랐던 것인지 팔짱을 끼고 펜스에 기대어 그라운드 안을 바라보던 사나다의 팔이 삐끗 미끌렸다. 앞으로 쏟아질 뻔 한 몸을 겨우 가누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아라키가 웃었다. 웃을 리가 없는데. 아라키는, 적어도 사나다에게는 웃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전날 9회 말 원 아웃. 막 입단한 신인답지 않게 난공불락의 강렬한 모습을 보여 왔던 사나다 슌페이의 첫 번째 블론세이브는, 역시나, 그의 첫 보크 순간과 함께 찾아왔다. 그것은 아홉수에 걸려 네 경기나 승이 없던 대 선배의 열 번째 승리를 날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라키의 웃는 얼굴에 전 날의 일이 떠오른다. 팀이 이기기는 했지만. 그 아홉수라는 대단한 마법에 자신이 숟가락을 얹은 것을 생각하니, 밀려오는 뻘쭘함에 푸푸 마른세수를 했다. 그대로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그때까지도 아라키는 사나다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게다가 뙤약볕 아래에서 멈춰선 채다. 끝나가는 여름, 이글이글 타는 태양이 엄청난 열을 쏟아내는 그 아래에 서서 고글을 끼고, 허리춤에는 손을 얹어서,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사나다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푹 젖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또옥, 인조잔디에 떨어지는 것 까지 지켜보았던 사나다의 혓바닥이 제 입술을 훑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선방한 것 같구나.”

그리하여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라키 쪽이다. 아라키 이치로의 경우는, 아마도, 앞으로 많은 해를 사나다와 함께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 프로에 몸담아왔기에 어제의 일에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소중한 승리를 날렸다는 이유와,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이유가 오히려 사나다를 꽤나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사나다는 농담조의 말에도 신통한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휘고 하하 웃음소리를 내면서, 볼을 긁적일 뿐이다. 선방 할 거면 조금만 더 버텼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첫 등판 때 만루 홈런도 맞아봤거든. 그러니까-.”

그의 말이 완벽하게 맺어질 수 없게 된 것은 내야로부터 날아온 홈런 때문이다. 뒤늦은 배팅연습에 공이 사나다의 머리 위로 넘어가고, 아라키는 그에 하던 말을 멈추었다. 두 사람의 고개가 같이 하늘을 향했다가, 펜스 너머로 사라진 공을 쫓은 것이다. 그리고 넘어가는 듯 젖혔던 사나다의 몸이 그라운드 쪽을 향하고, 다시 눈이 맞았다. 아라키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생각은 없는지 푸 숨을 내뱉으면서 웃었다. 허리에 얹혀있던 오른손이 붕 허공을 가른 다음 팔랑팔랑 움직인다. 해서 사나다의 눈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손끝을 맹렬하게 쫓았다. 그는, 물론 멀끔한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사나다에게는 그의 손 움직임이, 얼굴보다 더욱 강렬하게 눈길을 끌었다. 항상 그 손은 묘하게 사나다를 홀리곤 했다.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아니 사실은 그보다도 이전에 사나다는 그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여자 관객의 짧은 치마에도, 하얀 블라우스에도 흥미를 느낀 적이 있지만 아라키의 움직임은 그보다도 강렬하게 사나다의 시선을 죄어왔다.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 곱지도, 매력 있지도 않은 투박한 손일 뿐 인데도 말이다

어렵다면, 내 비법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어.”

말을 잊은 듯 했던 아라키가 고글을 벗으면서 말을 이었다. 내내 가려있던 눈이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잔뜩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의 눈매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있던 사나다가 눈을 껌뻑껌뻑 하면서, 대뜸,

둘이서요?”

라고 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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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아라] 보크 :: 2014. 5. 27. 04:22 2D

애석하게도.

이변은 없었고.”

라이치의 호쾌한 타격으로 7회 콜드까지 얻어내고 부랴부랴 야구장을 나서자마자 찾아낸 대진표의 王谷에는 사선이 관통해 있다. 사나다는 애꿎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쳐 본다. 그런다고 경기결과가 뒤집힐 리 만무하기에 그의 손길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사실 그는 지금 꽤나 복잡하다. 세이도의 준결승 진출이 반가운 마음 반, 오우야의 탈락이 아쉬운 마음 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나다는 고민에 빠졌다. 패장에게 연락할 수 있는 타이밍은 언제인가는 차치하고라도 수단이 문제였다. 쇼트메일이 좋을지 원래대로 메일이 좋을지. 혹은 전화가 좋을 것인지. 사나다는 그 숫자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턱을 쓸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번호를 받아낸 것은 뜻밖의 행운이지만 또한 문자로 하렴.’하는, 쇼트메일에 대한 암시는 또한 그를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라키감독이 저에게 거리를 두는 것인지, 아니면 호의인지 영 헷갈리고 있다 이 말이다. 그것이 궁금할 만큼, 불과 며칠사이 아라키감독에 대한 사나다의 마음은 급변했다. 아라키의 여유로운 대처가 가장 큰 동인動因이었다. 오우야의 패배에서 아라키감독의 휴대폰 번호까지 생각이 흐른 것을 깨달은 사나다가 손을 멈췄다. 문득 태평하게 남의 경기 결과를 보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것을 막 알아챈 참이다. 허나 그가 그것을 알아챈다고 한들 또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앞으로 있을 경기에 대한 염려 따위의 것은 애초에 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아라키 이치로.

사나다선~~”

하얀 종이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가득 찬 것은 한참이나 아래에서 미간에 힘을 주고 있는 까무잡잡한 라이치였다. 그는 여전히 활력 넘치는 후배에 대꾸도 하지 않고 눈길만 건넸다. 그러나 역시, 사나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라이치도 내일 오전 연습은 오프래요.’라는 짤막한 말을 던지고 주먹으로 옆구리를 툭 쳤다. 도통 정상적인 대화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라이치의 말 한방에 사방팔방으로 가지 치던 사나다의 생각이 멈췄다. 그렇지만 끄덕이든 대답을 하든, 어떠한 리액션을 취해야 하는 사나다도 그와 마찬가지로 얼굴께 있던 손으로 그의 볼을 쭉 잡아당기는 것이 전부다.

오후에는 가벼운 러닝 정도만 한다는 것 같던데요?”

.”

왜요.”

집에 가.”

 

*

 

뜨악 하는 얼굴로 쳐다보던 라이치의 이마에 딱밤을 선물하고, 바삐 짐을 챙겨 모노레일을 탈 생각이었다. 곧장 내달린다 해도 메이지 진구 제 2구장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그는 이런저런 계산에는 무척 취약했다. 더욱이 마음 내키는 대로.’가 그의 생활 신조였기에 그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토도로키 라이치에게 허리춤을 잡히기 전 까지는.

양껏 먹으라는 말에 이미 충분하다는 대답을 하자, 아들과 나란히 그릇에 입을 대고 국물을 들이키던 토도로키감독이 눈썹을 들썩였다. 큰맘 먹었다는 것이 라면가게인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서도 호쾌하던 사나다의 마음이 찝찝해지기 시작한 것은 4강 확정팀에 대한 소식이 뉴스에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붙잡히고 나니 만날 리 없을 아라키감독에 대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 탓이다. 팔로 연신 눈가를 닦아내는 그의 에이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모습이라든지 차분하게 패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 감독의 얼굴이라든지. 보자마자 갑작스럽게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의 문제는, 그에게 연락을 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린 것 같다는 사실이다. 사나다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열어 몇 번이나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정신 사납게 뭐 하는 거야. 다 먹었으면 얼른 집에 가 버려!”

아하하하.”

사나다는 무심결에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저의 고민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귀가 명령이 떨어졌다. 아주 잠시간은 당황했지만 급한 마음에 예의상의 사양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 멨다. 덜컹 거리는 테이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접에 얼굴을 박고 음식을 흡입하고 있던 라이치의 머리를 한번 꾸욱 누르고 나서, 토도로키 감독에는 목례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순식간에 밝은 얼굴이 된 사나다의 변화만큼은 조금 눈치 챈 듯 의아하다는 얼굴로 토도로키 감독은 살짝 손을 흔들어 준다. 그에 대한, ‘고맙습니다.’라는 대꾸가 무슨 문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사나다는 가게를 나서며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고민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사나다의 손가락은 누마베예요?’하는 물음을 전송했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몇 분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이런. 급했네.”

해서 그는 다시 자판을 누르며 사나다입니다.’라는 문장을 완성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름을 다 쓰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아라키감독이다. 뾰롱뾰롱 화면이 깜빡이자 사나다의 눈썹이 사정없이 구부러진다. 그것은 놀라움을 표현하는 사나다만의 버릇이었다. 사나다는 오히려 좀 전까지의 초조한 기색이 싹 가신 얼굴을 했고, 꾹 눌러 닫은 입꼬리 역시 부지런히 오른다. 단지 전화가 걸려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댄 체 누르지 않는다. 그가 연결을 결정한 것은, 전화벨이 네 번 이상 울리고 나서야다. 몇 번 소리가 터졌다는 것을 깨닫고 사나다는 얕고 긴 한숨을 내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 아라키감독. 저 사나다입니다.”

하하하. 알고 있어. 바쁘니?’

아뇨. 전혀 아닙니다.”

좀 전에 뉴스에 나오더구나. 승리 축하한다. 준결승에서 만나길 바랐는데 아쉽게 됐어.’

분명 먼저 연락을 시도했는데 갑작스럽게 판도가 바뀌었다. 패장의 축언이라니 난처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바로 앞에 서 있을 때보다 더 가깝게,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아라키의 목소리에 사나다가 또 한 번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영 어려운 사람이다. 꼴 전화선이 없어서 하릴없이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그득그득 긁는 사나다가 묵언수행을 하듯 아무 말 하지 않자 수화기 너머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사나다와는 다르게, 그는 아마 썩 시원한 얼굴로 웃음 짓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진처럼 사나다의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라키 감독, 잊기 힘든 인상이 아니다. 사나다는 곧바로 수긍했다. ‘첫눈에 반한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것. 사실 정말로의 이유는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그러지지 않는, 그럴싸한 이유라면 그게 바로 혜안이다. 복잡하게 망울을 터뜨리는 가지들 중에 가장 뚜렷하고 길게 뻗은 선을 잡아 챈 것이다.

그리고 좀 전의 쇼트메일에 대한 대답 말인데. 누마베가 아니야. 사나다군은 어디?’

아아. 저는 다치아이가와역立会川駅이요.”

순간 소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사나다의 목소리와 중첩되었기에 그는,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을 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해야 하나. 아라키와의 소통은 어렵다. 그렇지만 끊고 싶지는 않다. 가벼운 근심거리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마른 입술을 한번 부비는 데 아라키가 그런다. ‘근처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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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아라] 7 :: 2014. 1. 2. 01:53 2D

굉장한 사람이네.”

정말로 번호를 알려줄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사나다는 고개를 내저었다. 얼떨결에 건넨 휴대폰에 결국 그의 전화번호 열한자리가 찍혔다.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로 휴대폰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몸을 틀어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기에 없다. 사나다를 내려준 후에도 한참이나 턱을 괴고 지켜보던 아라키 감독이 떠난 역사에는, 눅눅한 밤이 짙다.

정보를 조금 얻어가니, 기브 앤 테이크의 느낌으로. 아무래도 학생 정보를 그냥 빼 가기엔 나도 양심 있는 선생이라서 말이야.’ 마치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라키가 말한 정보라는 것은 사나다의 손에서부터 흘러 나간 것이었다. 잠깐의 스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 짧은 사이 꽤나 많은 것을 얻은 듯 한 표정이었다. 직접 닿아 더욱 확실해졌다-하고, 말한 그는 과연 면밀하게 사나다를 훑은 듯 했다. 하지만 사나다는 오히려 미안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사나다 슌페이의 데이터는, 그를 만난 시점에서 이미 무용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보 주워가 봤자 일 텐데.”

반면 그에게 조금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다시 한 번의 접촉이었다. 뒤집혀진 아라키 감독의 손바닥 위에 휴대폰을 올릴 때 닿았던 감각은, 새로운 그립을 쥐게 되었을 때와 같이 꽤나 짜릿했다. 요컨대 커터. 무릎과 허벅지로 이미 과부하의 위험이 있기에 구종추가로 인한 몸의 부담이라는 디메리트를 극복하기 위하여 고안해 낸 것이었다. 간혹 그것은 투심과 섞여버리는 탓에, 누군가들의 말처럼 제구가 안 되는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바로 그것이 사나다에 대한 정찰을 무용하게 만들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서 사나다에게는 적에게 전술을 읽혔다는 사실보다 아라키 감독과 또 한 번 닿았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짧은 순간, 전기가 튀어 올랐던 좀 전의 감각이 불현듯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나다는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문지른다. 중요한 대회를 코앞에 두고 꽤나 골치 아픈 일이 생겨 버렸다. 허나 이로써 그에 대한 마음이 조금 확실해 졌다.

꼭 만나고 싶은데~ 아라키 감독.”

잠시 꺼 두었던 시동을 다시 건 그는 마지막에 어쩌면.’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느물느물하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아라키 감독이, 단순히 운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혹은 자만심이라는 기름기가 쏙 빠진 그의 예측인 것 같았다. 무운武運을 바라는 그의 태도는 제법 곧게 자신만만했다.

그 문무양도文武兩道라는 게 진짜로 세이도한테 먹히려나, 하하.”

올라왔으면 하고 바랐던 세이도와 맞서는 아라키 감독의 오우야. 이례적으로 복잡해 진 마음에 사나다는 아라키감독이 내내 그랬던 것처럼 가볍게 팔짱을 끼고 하늘을 베개 삼아 천천히 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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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아라] 6 :: 2013. 11. 23. 06:59 2D

선뜻, 꽤나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호의에 사나다는 놀라는 얼굴을 한다. 구면이라 하기는 너무 스치듯 만난 인연이고, 초면이라 하기는 만난 적이 있으니- 사실은 그 어느 쪽에 치우친 것보다도 애매한 사이이다. 그런 아라키로부터의 제안이다. 아라키 감독이 단지 선량한 사람인 것인지 혹은 자신과 엇비슷한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알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나쁜 타이밍에 주어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번뜩 머릿속에서 터졌다. 사나다는 말보다도 먼저 차의 뒷자리 문을 잡아당겼다.

예의 바른 학생들처럼 거절하는 척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감사히 얻어 탈게요.”

사나다군, 잠깐.”

?”

그쪽이 아냐, 그쪽이. 어른이 운전할 때에는 옆 좌석이야. 모르는구나?”

아라키 감독이 다시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오른편으로 톡톡 손짓을 날렸다. ‘이런.’ 그의 가벼운 손짓에 시선을 빼앗긴 사나다가 쯔 하고 혀를 찬다. 그의 손이 스쳤던 중지가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축축했던 자신의 손과, 차던 아라키 감독의 손이 닿은 직후의 바로 그 느낌인 것이다. 사나다는 갑작스럽게 땀이 차 오른 손바닥을 옷자락에 한번 비비고 나서 차체 뒤 쪽으로 빙 돌았다.

 

*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정말 잘 먹네? 왕성해. 그래서 몸집이 상당한 건가.”

하하 웃음소리까지 내면서 턱을 괴고 바라보는 아라키에, 햄버거를 입 앞 까지 가져갔던 사나다의 손이 멈칫 한다. 한껏 벌렸던 입을 얌전히 다물고 나서 두 개째의 햄버거가 너무했나 하는, 조금은 뻘쭘한 표정으로 아라키를 쳐다봤다. 그는, 엄청 괜찮은 그림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듯한 얼굴로 마저 먹을 것을 부추겨 올리는 손짓을 한다. 애 취급.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딱히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남부터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생각에 햄버거가 갑자기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기껏 얻어먹는 것이기에 사나다는 야무지게 크게 한입 물었다. 그가 우물우물 식사중인 것과 상관없이 아라키 감독은 그에게 대답을 요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래서, 신주쿠에는 구장 때문일 테고. 가야 할 곳은 어디?”

코엔지高円寺. 근처에 살아요.”

걷기에는 제법 멀구나. 난 반대방향인데, 누마베沼部.”

사실 내 쪽이 좀 더 멀어, 한참이지? 아라키 감독에 대한 첫 인상이 꽤나 신중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엄청나게 장난꾸러기 같게 느껴지는 것이다. 들고 있던 햄버거를 모두 입에 밀어 넣은 사나다는, ‘그렇군요.’ 따위의 동조 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확실히 오늘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라키 감독은, 진중하다기보다는 조금 붕 뜬 느낌이다. 그것은 사나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이다. 그는 꽤나 차분한 분석가 타입 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 이미지와는 엇나가고 있는 중이다. 덕분인지 탓인지 그가 사는 곳 까지 엉겁결에 알게 되었지만은. 물론 그것은 그의 학교 근처일 테다. ‘누마베까지는 삼십분 이상이려나.’ 돌아가는 그가 운전대를 잡은 모습을 상상하며 왼쪽으로 보냈던 시선을 아라키에게서 멈췄다. 다시 봐도 꽤나- 엷은 것 같으면서도 잊기 힘든 인상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이보다 훨씬 더 젊고 멀끔하게 생긴 탓이다. 사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떠올렸다는 생각에 마른 입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는 한층 나른해진 눈매가 그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어때. 괜찮아?”

아까부터 계속 물어보고 있는걸요. 하지만 사나다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차비를 쥐어주기보다 역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를 해줄 것 같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사실 그가 사나다에게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내는 것이, 사나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묘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내가 메일 주고받을 것 같은 얼굴이니?”

.”

마지막으로 남은 콜라를 쪽 빨아올리던 사나다가 짧게 기침을 토했다. 그대로 눈을 크게 껌뻑이고 나서 고개를 홱 들었다. 명함, 들켰나. 난처함이 뚝뚝 흐르는 얼굴을 감출 길이 없어 손바닥으로 얼굴 반을 가려 막은 사나다와는 다르게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는 아라키는 상당히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사나다를 곧게 쳐다보고 있다. 다행히 볼썽사납게 분출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마실 의욕이 뚝 떨어지게 된 상태의 콜라컵을 손에서 놓았다. ‘상당히 허를 찌르는구만.’ 하지만 그것이 별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확실히 아라키는, 변명을 덧붙여야 할 상대가 아니다. 불현 듯 대회가 바로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생각해낸 사나다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한번 훔쳤다. 그러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메일 보내도 돼요?”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전송예고를 아라키 감독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역시 ?’하고 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나다는 미간을 세게 찌푸린 채로 웃었다. 그러나 어른의 행동이란 아직, 사나다의 예측을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다.

문자로 하렴.”

아라키는 이번에도 예상치 못했던 호의를 담아 선뜻 손바닥을 내 보이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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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형주철 앞에 한참동안 쭈그리고 앉아있던 사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무릎을 지탱하고 있던 팔꿈치에 힘을 주었다. 이제는 미련 없이 일어나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참이다. 읏샤 일으킨 몸뚱이를 어슷하게 세우고 한 팔로 허리를 짚고 나서 다음에 대한 궁리의 뜻으로 눈동자는 왼쪽을 향했다. 그때다. 꽤나 훤한 시야였다고 생각했는데 답답한 무엇인가가 그것을 막아섰다. 아니, 정확히는 비집고 들어왔다. 8강을 단 하루를 남기고 생긴 틈이다.

얼라.”

, 야쿠시의 사나다.”

교명을 앞에 붙이고 스스로가 되짚어 보는 듯 한 느낌으로의 호명은, 예의 그 아라키 이치로였다. 그 부름과 같이 좀 전 까지 창틀에 팔을 걸치고 턱을 얹어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나다가 자리에서 일어남으로써 둘의 위치는 정 반대로 바뀌어 있는 상태다. 사나다가 고지를 점했다. 허나 물리적 위치를 제외하면 그 어느 것에서도 사나다가 우위인 게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챈 사나다는 어려운 상대를 어려운 시기에 다시 만났다는 생각에 가볍게 말아 쥔 손을 입술에 댔다. 물론 꽤나 만나고 싶어 하긴 했지만, 이것은.

안녕하십니까, -”

라키 감독? 하하, 마운드 아래에서의 너는 생각보다 알기 쉽구나.”

생각보다는 무척 짧은 인터벌이다. 준비 없이 그와 마주쳤다. 더군다나 야구장이 아닌 시가지에서의 만남이라는 것은 아직 상상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 허나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 그나, 사나다나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에 생각보다는 괜찮은 그림이다. 자신의 말을 가로챈 아라키 감독에게 조금 놀란 얼굴을 보이는 것 까지 전부 포함해서 그렇다.

물론 예상 밖의 행동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아 저는.”

눈동자를 살짝 오른쪽으로 움직였던 아라키 감독이 재빨리 사나다와 눈을 맞췄다. 그것이 워낙 순식간이었던 데다가 마지막 물음에 대한 대답이 버릇인 탓에, 사나다는 다시 발밑을 내려다본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와, 에너지가 이 안쪽으로. 이렇게 말이죠.”

손가락 두 개로 동전을 만든 다음에 아래쪽으로 쭈욱 떨어뜨리는 시늉을 한다. 그의 움직임은 온전히 각형주철로 향했다. 그랬더니 단번에 이해한 것인지 아라키 감독은 망설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만났던 내내 웃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눈이 감길 정도로 활짝 웃는 것은 처음이다. 그 탓에 설명을 이어가려던 사나다는 그것을 멈추고, 조금 놀란 얼굴로 그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엄청 유쾌하게 웃었네, 지금.’ 하지만 그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군의 최고 장수가 위기인 상태인가? 요컨대 고립무원孤立無援 정도.”

우선 최고가 아닌데, 그렇게 반박하려던 사나다는 뒤따라 나온 성어에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을 그치기 위해 얼굴을 조금 찌푸린 아라키 감독은, 의외의 제안을 툭 던졌다.

에이스를 건져 올리는 것이 나중에 굉장한 변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나다. 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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