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키 테츠야x미유키 카즈야

for kirru~♥

 

 

해가 기우니 방안의 온도는 망설임 없이 치솟는다. 부지 부족 때문에 남서향으로 지어진 기숙사가 그림자를 모두 집어삼키고, 길게 쑤시고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펑펑 열을 뿜어댄다. 덕분에 대낮의 땡볕 아래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렸을 때 보다 체감온도가 높다. 부채는 낮보다도 더 열심히 팔랑거리며 바람 소리를 낸다. 펄럭 펄럭 큰 소리를 내며 내내 팔을 부지런히 휘두르던 미유키는, 열에 막혀 무용한 선풍기보다는 제 역할을 확실히 하던 부채를 손에 꼭 쥐고 앞으로 계속 될 지긋지긋할 더위를 알고 있는 듯 이미 반쯤 녹아버린 표정으로 최대한 납작하게 방바닥에 엎드린다. 원래라면 에어컨으로 시원했겠지만 미유키의 방은 언제나 정원초과다.

“미윳키가 땅으로 꺼져버리면 우리 공은 누가 받는 겁니까?”

“공 받게 하려면 존중부터 해 줄래 사와무라?”

정작은 그 말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 실은 미유키의 것은 액션의 일부일 뿐이다. 그 틈에 허리에 올라앉으려는 쿠라모치의 앞에, 드디어, 팔을 길게 내 뻗으며 말린 유우키가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딱딱한 나무의자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다들.”

대회를 앞둔 터라 캡틴의 말 한마디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심지어는 엿가락처럼 몸을 늘어뜨렸던 미유키까지도. 항상 정렬을 할 때마다 다른 팀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터라 오히려 미유키의 집중은 드문 일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점잖은 목소리 때문에 집중도가 더 좋은 덕도 있다. 기대에 찬 열 네 개의 눈동자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자에게 심심深心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 어떤 격려의 말이 나올지 초롱초롱하게 기다린다.

“방으로 해산해. 이제부터 나는 미유키 카즈야와 장기를 둘 예정이다.”

사실 예상 가능할 만큼 진부한 언령이긴 하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타이밍이란 언제나 제각각이다. 해서 결코 이번을 예상하지 못했던, 유우키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은 식은땀과 함께 짜증으로 뒤덮인다. 물론 미유키도 예외는 아니다.

“..뭐 그런 말을 그렇게 근엄하게 하십니까.”

특히나 정말로 기운이 빠진 사와무라보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하루이치다. 그리고 그것은 길게 늘어진 사와무라의 탄식이 끝나기도 전이다. 언제나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방바닥을 비비고 다니던 이사시키가 그보다도 빠르게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 바람에 정말 덥다고 생각했던 방에 조금 더 후끈하게 젖어있는 공기가 넘실거리며 들어찬다.

“거기 나가는 사람들. 문은 활짝 열지 말고 나가도록 하고.”

“예이, 예이.”

제일 먼저 씩씩하게 탈출할 것 같던 사와무라가 더위에 좀처럼 움직이기 힘든 것인지 보기 드물게 굼뜬 행동을 보인다. 사실 열대야를 돌파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제야 겨우 여름의 초엽일 뿐이니까. 그러나 올해는 초엽부터 지독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끈적하고 뜨거운 서도쿄의 공기 때문에 한 걸음을 걸을 때 마다 한 사람에게 뒤쳐져버리는 것이다. 이에 제일 먼저 일어섰던 하루이치는 인내심 좋게 그것을 기다렸다가, ‘에이준군.’하고 부른다. 하지만 그 뒤에 따르는 말은 없다. 하루이치에게 있어서 그에 대한 호칭은 대부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하루이치와 사와무라를 마지막으로 복작이던 방에는 이제 두 사람만이 남고, 더해 가득 차 있던 열기도 조금 빠져나가는 듯하다. 부산하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유우키의 시선이 그제야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미유키.”

“그게 말입니다. 좀 웃을까 하고 고민 중이었거든요.”

“웃다니?”

버젓한 세미나룸, 사실 식당이기 때문에 버젓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미유키의 방보다는 쾌적한 그곳을 마다하고 매번 들어차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은 오늘도 역시 없었던 건지 그의 표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의아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보는 유우키와는 다르게 얼굴의 모든 근육이 쉴 새 없이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을 정도로 활기차다. 결국에는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웃던 미유키가 무릎을 품듯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다리를 앞으로 쭉 내어 뻗으면서 올려다본다. 웃음을 잔뜩 담은 미유키의 얼굴에 불만은커녕, 아까보다 조금 누그러진 것 같은 표정의 유우키는 말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상대의 피곤함이 순간에 날아간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낡은 것 말고 다른 수법을 써 봐요. 나한테도 그렇고요. ‘장기 둘래?’ 같은 세리후台詞는 말고요. 그러다가 곧 들키고 말겁니다, 테츠상.”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곳은, 자신의 책상 옆에 비스듬하게 선 상대의 장기판 위다. 언제부턴가는 이 방에서 나간 적도 없었다. 그건 오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 덕에 옆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손의 감각만으로 허공을 더듬어 그것에 닿은 미유키는 부르튼 손가락으로 장기판을 쥐어 잡고 나서 당긴다. 부르르 바닥을 긁으며 끌려나온 장기판은 미유키의 앞에 반듯하게 놓인다. 항상 하던 대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던 유우키는 모든 것이 고르게 정돈되고 나서야 미유키를 마주하고 앉는다. 무엇보다도, 모처럼만에 웃는 얼굴로.

미소 짓는 얼굴을 훔치듯 흘긋 본 미유키는 유우키가 앉는 동안 끄집어낸 초록색 장기짝 통의 뚜껑을 열고 홍을 잡아 쥔다. 미유키 카즈야 외에는 그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한漢의 포包가 가장 먼저 비장하게 신비자나무의 위에 오른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한은 유우키의 나라였다. 이제 그 홍색의 장기짝 들이 미유키의 손에 쥐어진 다는 것을 아는 건 오로지 유우키 뿐 이다.

“사실 들킨다거나 그런 건 별로 상관없어.”

다른 장기짝들이 판에 우르르 판에 쏟아지기 전에 먼저 유우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결코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 탓에 불현 듯, 미유키는, ‘이제 그럴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다.’던 덤덤한 목소리를 한번 떠올렸다.

 

*

 

청량한 마찰음이 끊긴 것은 생각보다 야심한 새벽이었고, 비단 그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이미 잠들었어야 할 미유키의 룸메이트들은 그 이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유우키는 다시 장기판을 그 방에 놓아둔 채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마 조금 더 늦은 취침의 탓인지 유우키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동은 트고 있었다. 새벽의 어스름이 물러가기 직전이고 아침이 밝아오기 직전이다. 꽤나 찌뿌둥하게 뭉쳐있는 근육 탓에, 깍지를 낀 채로 손바닥을 뒤집어 하늘로 펼치면서 고개도 젖혀보던 유우키가 움직임을 멈춘다. 반팔의 셔츠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여름 기분을 낸 미유키 카즈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굿모닝입니까, 테츠상?”

“좋은 아침이다. 미유키.”

똑같이 깍지를 낀 상태로 축 늘어져 에메랄드빛 살을 가리고 있던 미유키의 맞잡은 손이 풀리고 나서 곧게 가로 뻗어진 난간손잡이 위에 얹힌다. 그리고 엉덩이를 쭉 내빼고, 턱을 손등 위에 올린 채로 유우키를 내려다본다. 언제 봐도 걸작이다 진지한 저 얼굴은. 어쨌든 장난스러움이 디폴트인 미유키로서는 절대로 풍겨낼 수 없는 느낌이다. 주름진 미간으로부터 v자 모양으로 구부려 올려 진 유우키의 눈매부터 찬찬히 살피고 내려간 다음 다시, 시선을 맞춘다.

“테츠상의 피곤한 얼굴은 늦게 잔 탓입니까, 아니면 멈출 수 없는 초楚나라의 패전 때문입니까?”

“아마도, 둘 다 아닌 것 같은데. 특히 패전에의 통탄은 하지 않아. 언제고 전세는 역전되기 마련이야.”

“그러면요?”

“너를 올려다보고 있는 탓이지. 내려와, 카즈야. 나와 아침 산책하자.”

가건물이 주는 위태로움은 이제 없다. 벌써 3년째 함께하고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집보다도 튼튼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숙소의 한켠에 자리하고 있던 미유키에게 손짓을 한다. 미유키는 예상치 못했던 유우키의 제안보다도 저를 부르는 ‘카즈야’라는 목소리에 잠시 놀라는 것 같은 얼굴을 했다가 이내 푸슉 웃음 섞인 숨을 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내려갑니다.”

소란하게 움직이는 일이 별로 없던 미유키가 아래층에 들릴 정도로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복도를 쓸며 달린다. 허나 금방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부탁도 하지 않은 미유키의 신발을 미리 꺼내어 바닥에 곱게 내려놓은 유우키는 뒷짐을 지고 선다. 걸쳐 입을 옷이라도 들고 나올 미유키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양새다. 허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단 몇 초 만에 바로 직전의 모습 그대로 유우키의 앞에 섰다.

“땀 흘리면 추울 수도 있으니 옷을 챙겨서 다시 나와.”

“여자 친구 챙기는 것 같은 대사도 하지 말아요. 나 참, 괜찮습니다. 원래 산책은 가볍게 하는 거예요.”

“여자 친구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같아. 그리고 산책은 채비를 하고 떠나는 거다.”

“지금 하는 말 전부다 과합니다. 으와 왕고집. 그냥 안 가면 아침 연습으로 직행해야 한다고요. 그냥 가요.”

다행히도 미유키가 먼저 유우키의 팔을 잡아 끈 탓에 걸음은 이미 숙소의 반대방향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의 실랑이는 사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지 않다는 조건 하에서는 비교적 빈번한 것이다. 융통성의 왕인 탓에 미유키가 매번 져 주고는 있지만 사실 다수는 그가 옳다. 어쨌거나 겨우, 미유키의 말처럼 장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불러낸 유우키는 익숙한 듯 학교 밖으로 걸음을 걷는다. 러닝 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조금 느린 것 같은 유우키의 걸음에 비해, 반대로 평소보다는 더 빠른 미유키의 걸음은 곧이라도 엇나갈 것 같은 박자다. 그걸 알아채고 속도를 맞춘 것은 미유키다. 뿔테안경을 한 번 검지와 중지로 밀어 올리며 여유로운 걸음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때 유우키는 고개를 돌려 유심히 미유키의 옆얼굴을 본다.

“눈이 많이 안 좋다고 말했던가?”

“아. 그건 꼭 그렇지도 않아요. 없어도 괜찮은 정도까지 시력이 올라올 때가 많아요.”

한번쯤은 이미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말인데도 분명 처음 나누는 이야기다. 유우키의 말처럼 이미 좋아하고 있는 사이라고는 해도 사실,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는 야구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개인의 색깔을 지운 야구가 두 사람을 가장 단단히 엮은 고리인 것이다. 더욱이 올해가 시작되기 전 까지 둘은 아무 사이가 아니기도 했다.

“그렇다면 굳이 불편한 걸 몸에 달고 있을 필요가 있나.”

“그게... 뭐랄까요. 테츠상도 알다시피 주변 신경 쓰는 게 몸에 밴 보직이다 보니까요. 특정한 프레임으로 붙잡아두는 게 집중할 때 도움이 돼요. 평소에 쓰는 안경도 마찬가지고요.”

“무..”

무슨 소리지? 하는 말이 나올 법한 타이밍인데 유우키는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이미 알아들은 후였다. 그리고 미유키 역시 유우키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그리고 왜 멈췄는지를 알아챘다. 항상 부연 설명이 필요했던 유우키였는데도, 설명이 필요 없는 엄청나게 빠른 이해인 탓에 미유키는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 한 것을 겨우 멈춘 것이다. 사실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유우키가 재빠르게 멈추면서 지은 표정은 생각보다는 귀여운, 고등학생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 걸음을 더 걸었을 때 유우키의 뒤로 새빨간 불꽃이 터져 올랐다. 이번에는 미유키의 표정이 바로 좀 전의 유우키처럼 터져나왔다. 동그랗게 뜬 눈이 유우키 너머에 있는 것에 고정된다.

“..우..오왁 이거 뭐야.”

“음?”

종종 자신이 걷던 길이라 분명, 희한한 것이 튀어 나올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미유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유우키는 그제야 미유키가 탄성을 터뜨린 것이 무엇인 줄을 알았다.

“엄청 크다. 불꽃 터진 거 같네.”

“맨드라미야.”

혼잣말을 하려는 미유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더니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의문부호로 휩싸인 표정을 짓는다. 유우키는 그를 한번 쳐다보고 나서 햇살을 받아 유독 더 붉은 맨드라미에 시선을 던졌다. 적어도 미유키는 난생처음 본 식물이 타는 듯한 그 위용을 자랑하며 담장 너머로 불쑥 솟아있다. 확실히 처음 이 꽃을 본 사람들은 놀랄 만하다. 미유키는 모르겠지만 매년 여름이 그 온도를 올려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맨드라미는 크게 꽃을 피워 왔다. 생각 필요할 때 마다, 생각을 하지 않기 유우키는 항상 이 길을 걸었다. 붉은 한漢을 쥐고 있던 어제의 미유키를 한번 떠올리면서 맨드라미를 바라보던 유우키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다는 듯 그것은 언제나처럼 여전하구나 하고.

“어떻게 알아요?”

“앞집 정원에서 키우고 있어. 벌써 꽃을 피우다니, 여름이 아주 가까이에 왔나 보군.”

단숨에 계절이 당겨져 버린 것 때문인지 미유키가 가볍게 닫고 있던 입술을 꽉 깨물어 문다. 좀처럼은 보이지 않는 불편한 얼굴이다. 생각보다 가벼운 잠시간의 침묵이 “테츠상 저.”하는 미유키의 목소리에 의해 깨진다. 그리고 잠시간의 뜸을 들인다. 항상 곧게 펴고 있던 눈썹을 구부리면서다. 하루이치와는 반대로, 호칭 후에는 반드시 내용을 끌어내던 미유키가 웬일로 말을 멈춘 거다. 그리고는 이을 생각이 없다. 혹은 이을 수가 없는 것이다.

“카즈야.”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떤 말이 이끌려 나오던 간에 아니면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실 상관이 없다는 것 같은 목소리로 잘 부르지 않던 이름을 부른다. 비자나무 위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기다가 온기를 더하여 다독이듯 말한다.

“걱정 마. 초楚는 승전 할 때 까지 한漢을 두드릴 거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요?”

“아마도. 한漢이 초楚를 두드리겠지.”

유우키의 새까만 눈동자는 대국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임을 확신하는 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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