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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10.17  [사나메이] 친해요
  4. 2013.09.30  [테츠미유] 맨드라미 정원
  5. 2013.09.12  [사나미유] 모르는 척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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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더라.”

홑꺼풀인데도 매섭지 않은 눈이 유심히 훑었으니 사나다의 머리위에는 당연히 물음표가 뜰 수밖에 없었다. 스쳐가는 한 순간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유심히였다. 어깨를 부딪쳐 놓고 웃으면서 쏘리 한 마디를 한 채, 그는 금방 팔짱을 끼고 사나다를 스쳐 지났다. 그 짧은 틈에 모자까지 벗고 ,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한 사나다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그것이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시선이 분명하게 저를 살핀 탓이다. 사실 누구였더라도 아니고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이다. 도쿄도 안에 있는 오우야 고교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헌데 사나다의 머릿속에는 그의 데이터가 없다. 원래도 눈썰미가 좋거나, 기억력이 좋은 편인 것은 아니지만은. 아무리 그래도 제법 연식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으니 바가지 머리를 한 투수가 먼저 떠오를 리가 없다. 의문부호가 꽉꽉 머릿속에 차오르는 사이 그 남자가 스쳐지나가 버린 것이다. 사실 그게 누구든, 원래라면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을, 이상하게 자꾸 떠올리려 한다. 버릇대로 엄지를 윗입술에 댄 채 곰곰이 생각해 보던 사나다는 이내 뭐야 하며 고개를 저었다.

 

*

 

16강 경기가 종료되고 나오는 길에 다시 그 남자를 발견하고서야 사나다의 의문이 풀렸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그를 향해 고개 숙이는 것을 본 직후의 일이다. 그럼 그렇지 하며 손바닥을 짝 하고 맞댔다. 아라키 이치로 그 남자는 분명 사나다와 구면이었다. 몸의 부딪침 없이 눈이 맞고 나서 불현 듯, 그것이 떠올랐다. 그다지 좋은 인연은 아닌 터라 헛웃음이 터졌다. 눈까지 맞았으니 그냥 무시하는 것은 예가 아니기에 인사를 할까 생각하며 볼을 긁적였다. 그러나 제법 멀어서 또 무시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의외로, 그는 선수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사나다를 향해 걸음을 걸었다.

야쿠시 고교, 릴리프. 사나다 슌페이.”

인사할 타이밍을 빼앗긴 것은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전이다.

그래도 실질적인 에이스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고.”

하하. 안녕하십니까, 아라키 감독.”

어라. 너도 날 알고 있구나?”

얼핏 이야기 하는 걸 들었거든요. , 염탐은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웅성거리는 무리 속에서 그의 이름을 들은 것은 사실 조금의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능숙하지 않은 거짓말을 한 사나다의 불안정한 시선이 그의 얼굴을 떠나 발끝부터 훑어 올라올 때 까지, 아라키쪽에서 시작된 눈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짧은 순간에 느껴지는 큰 부담에 사나다는 시합을 위해 풀어두었던 맨 윗단추에 손을 댔다. 그때 또 아라키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사나다로부터 반쯤 몸을 돌렸다. 별 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로 곧이라도 그 자릴 떠날 생각인 것처럼.

그럼 좀 더 위에서 만나자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운이 남지 않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던 찰나, 아라키가 절반 남은 몸을 멈추었다.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너의 슈트도 연구대상이었거든.”

익히 들었을 슈트, 그리고 새로이 던지기 시작한 커터도 그는 이미 알고 있다고. 도립고교의 정보와 분석은 제법 훌륭하며 만난다면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더했다. 허나 사나다에게 그의 말이 쉬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분석이라는 것은 야쿠시고교가 별로 선택하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사나다에게는.

궁금했습니다만.”

정보노출을 꺼리는 편도 아닌데다가 아라키와의 대화는 별로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템포로 따라가는 것을 놓친 사나다가 난색을 표하자 아라키의 입매가 얍실하게 곡선을 그린다.

사나다 슌페이.”

.”

꼴찌?”

사나다는 곧, 쓰고 있던 모자를 끌어내려 입을 덮었다. 맙소사,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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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아라] 1 :: 2013. 11. 4. 03:49 2D

사나다 슌페이x나루미야 메이

 

 


가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아침부터 열을 뿜어대는 길게 누운 태양 탓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조금 더 늦장을 부리려다가 손부채질 할 겨를도 없이 하라다의 미트에 엉덩이를 맞은 나루미야가 앓는 소리를 내며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부산히 손을 휘저으면서 유니폼을 찾는데, 곧은길을 두고 굳이 울퉁불퉁한 흙길로 돌아 걷던 사나다를 발견하자마자 냉큼 자리를 피할 준비를 한다. 겨우 찾은 상의를 종이처럼 구겨 손에 쥐고 나서다. 중력 방향으로 양 팔을 길게 아래로 늘어뜨린 사나다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가 다시 허리를 펼 때 까지 나루미야는 그를 주시했다.

“오늘,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한다.”

중책을 맡고 있는 탓인지 하라다는 사나다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을 넘어 가건물을 빠져나간다. 입구를 열어주었던 사나다가 빛을 등지고 서자, 나루미야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마를 짚는다. 비록 연습경기이긴 하지만 바로 몇 시간 후면 맞붙을 팀의 중추가 저의 앞을 가로막은 셈이다.

“윽, 시라카와!”

“불러봤자야. 내 뒤에 서지도 마, 별로 네 방패가 되어 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도 전력누수는 사양이다 사나다, 군? 아무튼.”

“나 이나시로에 상당히 안 달가운 손님이네.”

“응.”

“시합 전에 남의 팀 진지로 쳐들어오는 게 어디 있어?”

불만스러운 듯 입술만 씹고 있던 나루미야는 업히듯 시라카와의 등 뒤에서 한 마디 거든다. 사실은 조금 구부린 그의 등을 받침대 삼아 턱을 괸 것에 가깝다. 경계한다기보다는 관조하는 것에 가깝던 나루미야의 자세가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다. 시라카와는 무거운 나루미야를 털어내고 허리를 곧게 편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지는 않겠다는 듯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끔, 양 손을 짝 합장하고 순식간에 그 사이에서 빠진다. 가운데에 서 있던 시라카와가 한걸음 물러섰을 뿐인데 사나다와 나루미야 사이에 조금 누그러져 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 가라앉는다. 마치 서로를 독대하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냉랭한 두 사람을 잠깐 쳐다보는 것 같던 시라카와는 이내 흥미가 식은 듯 돌아선다. 미처 챙기지 못한 장비들을 매만지면서 혼자 있는 것처럼, 금세 작은 움직임만으로 경기준비에 몰입한다.

“난 쟤 잘 모른단 말이야.”

“나루미야가 그때 슌이라고 말했어.”

나루미야의 불만은 시라카와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가 아닌 곧장 들려온 사나다로부터의 대답에 나루미야가 입을 닫는다. 평온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던 눈썹이 찌푸려진다. 이상한 낌새를 안 것은 아니겠지만 때맞춰 유일하게 남아있던 시라카와가 나가고 정말로 독대를 하게 된 두 사람은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것처럼 한 쪽은 팔짱을 끼고, 한 쪽은 엄지로 턱을 매만지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다. 마운드에서 내려와서는 유독 입체적이지 않은 사나다를 배경에 묻어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마, 이른 아침 탓이기도 하고 문틈으로 뻗어있는 빛이 전날과는 다르게 충분히 촉촉하게 젖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황홀경이 펼쳐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엷은 햇살이 들어찬 탓에, 곱게 개켜진 유니폼들과 장비들이 부단히 발색한다. 그와 함께 열이 가득 올라 나루미야의 표정은 또 금방 무너지고 만다. 더위에 약하지는 않지만 숨이 막힌다는 느낌은 영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두 사람 치고는 상당히 짧게 정적이 깨진 것은 그 때문이다.

“그건 이름이니까.”

“사나다가 보통이잖아.”

“이름은 슌이고!”

“슌페이.”

“..불러서 불만이라는 거야?”

단단하게 미간에 힘을 주고 있던 사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단호했던 표정이 금세 풀어지고 조금 경계 없는 얼굴을 한다. 그러고 나서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던 나루미야의 글러브를 양 손으로 잡더니 구부러진 공책을 펴는 사람처럼 앞뒤로 휘어본다.

“아니. 좋아, 나루미야가 슌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야. 다른 사람은 그렇게 부르지 않거든.”

“그래 영광이란 말이야, 우리처럼 안 친한데도 내가 슌이라고 불러주는 건!”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장비가 상대의 손에 들려 만져지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사나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루미야는 그러나, 그를 말리지는 않는다. 손을 뻗지 않고서 쉬이 직접적인 저지를 할 수 있을 텐데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그에 사나다는 생각보다는 섬세하게 매만지나 싶더니 전혀 익숙지 않은 동작으로 제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워본다. 일언반구의 허락이 없었는데도 나루미야는 그를 저지하지 않는다.

“그러게. 우리 안 친하지.”

어렵지 않아 왼 손? 전혀 맥락 없는 말을 뒤에 가져다 붙인 것이 굳이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 테다. 사나다의 그 버릇을 나루미야가 익히 아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지, ‘어려우면 내가 에이스겠냐.’하고 웃고 만다. 딱 거기까지다. 그 앞의 말은 아마도 신경 쓰지 못한듯하다. 좀 전 까지는 한껏 기분 좋은 얼굴로 웃고 있던 사나다의 한쪽 눈썹이 그믐달처럼 휘어 내려앉는다. 글러브를 낀 채로 손을 두 번 쥐었다 펴고 나서 곧게 나루미야를 본다. 이미 경계태세를 풀고 입을 벌리고 있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운동장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나루미야의, 쥐고 있다가 어느새 챙겨 입고 나서 단추도 채우지 않은 하얀 유니폼이 뱅글뱅글 부유하는 바람에 날린다.

“나루미야가 저번에 미유키를 카즈야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걔는, 카즈야니까.”

“그러면, 음. 나를 슌이라고 부르지 마.”

“뭐라고.”

예상치 못했던 사나다의 말에 나루미야가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편다. 그리고 전혀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본다. 생각만큼 차이나지는 않는 키 차이 덕에 시선만 조금 불편하게 위로 향한다.

“미유키랑은 친하고, 나랑은 친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독식하겠다는 태도다. 물론 사나다의 말, 혹은 나루미야의 생각처럼 두 사람의 사이는 딱히 관계 짓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거리가 있는 터라 온전히 그런 의도를 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지 나루미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매우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불평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게다가 그건 카즛!이 아니잖아. 슌은 슌이고.”

“특별한건 안 친한 정도로 해야겠어.”

원래는 한 마디라도 할 참이었는지 숨을 들이켰던 나루미야가 사나다의 말을 듣자마자 푸슉 내뱉어버린다.

“...성격 진짜 이상하다.”

“하하하.”

내려다보면서 웃는다. 줄곧 나루미야의 갈빛 글러브를 손에 끼고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며 제 손에 길들이는 듯 하던 사나다가 글러브를 잡아당겨 빼더니 나루미야의 머리 위에 얹는다. 그러자마자 조금 말랑말랑해 진 것 같은 글러브를 머리에서부터 쭉 잡아끌어 내린 다음에 샐쭉한 표정으로 사나다를 본다. 제 품으로 돌아온 글러브를 사나다 보다는 덜, 정성스럽게 만지작거리면서다. 야생마 같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이상하고 재미없고 불편해. 근데 합은 꽤나?”

좋다. 굳이 돌려 말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어떤 것에 대한 말인지 저도 갈피를 잡지 못한 것 같은 복잡한 표정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액션이 없어도 충분할 정도로.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운 걸 거다. 나루미야는 어렴풋하게 그것을 짚어 낸 것인지 큰 기복이 없는 사나다의 얼굴을 곧게 본다. 저에 비하면 꽤나 선량한 얼굴이지만 결코 길들여지지는 않은 것 같은 인상의, 착의의, 표정의 남자다.

“어쨌든 간에. 죽인대도 슌이라고 부를 거야.”

“뭐야 나루미야. 제멋대로네.”

어떠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실로 사나다는 그에 대해 체감하는 것은 없는지 나른한 얼굴을 하고 비어버린 손으로 아까의 나루미야처럼, 손바닥으로 턱을 포개어 받친다. 덜 갖춰 입은 나루미야에 비해 모처럼 멀끔하게 맨 위엣 단추까지 단정하게 채운 사나다가 금방, 입 꼬리를 바짝 올려 웃는 얼굴을 한다. 굳이 한 발로 서서 비틀거리며, 길게 늘어진 스타킹을 양쪽 다 겨우 당겨 신은 나루미야가 대충 스파이크를 구겨 발을 꽂고 선다. 그러다가 서 있기가 영 불편한 것인지 곧장 톡톡 앞 코를 땅에다가 부딪치면서다.

“너도 마찬가지거든? 게다가 릴리프지만 확실하게 에이스는 너야. 뜯어먹을 구석도 많고.”

“난 나루미야랑 다른데. 별로 얻어갈 게 없을 거야.”

“미유키한테 들었어. 너 되게 무서운 얼굴이었다며. 시합만은, 오늘도 그렇게 부탁한다.”

말릴 틈도 없이 쪼그리고 앉아 나루미야의 구겨진 뒤 굽을 손가락으로 잡아 펴 주던 사나다가, 고개를 들어 조금 놀라는 얼굴을 한다. 그러나 사나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루미야 역시 당혹스럽다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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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메이] 친해요 :: 2013. 10. 17. 16:09 2D

유우키 테츠야x미유키 카즈야

for kirru~♥

 

 

해가 기우니 방안의 온도는 망설임 없이 치솟는다. 부지 부족 때문에 남서향으로 지어진 기숙사가 그림자를 모두 집어삼키고, 길게 쑤시고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펑펑 열을 뿜어댄다. 덕분에 대낮의 땡볕 아래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렸을 때 보다 체감온도가 높다. 부채는 낮보다도 더 열심히 팔랑거리며 바람 소리를 낸다. 펄럭 펄럭 큰 소리를 내며 내내 팔을 부지런히 휘두르던 미유키는, 열에 막혀 무용한 선풍기보다는 제 역할을 확실히 하던 부채를 손에 꼭 쥐고 앞으로 계속 될 지긋지긋할 더위를 알고 있는 듯 이미 반쯤 녹아버린 표정으로 최대한 납작하게 방바닥에 엎드린다. 원래라면 에어컨으로 시원했겠지만 미유키의 방은 언제나 정원초과다.

“미윳키가 땅으로 꺼져버리면 우리 공은 누가 받는 겁니까?”

“공 받게 하려면 존중부터 해 줄래 사와무라?”

정작은 그 말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 실은 미유키의 것은 액션의 일부일 뿐이다. 그 틈에 허리에 올라앉으려는 쿠라모치의 앞에, 드디어, 팔을 길게 내 뻗으며 말린 유우키가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딱딱한 나무의자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다들.”

대회를 앞둔 터라 캡틴의 말 한마디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심지어는 엿가락처럼 몸을 늘어뜨렸던 미유키까지도. 항상 정렬을 할 때마다 다른 팀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터라 오히려 미유키의 집중은 드문 일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점잖은 목소리 때문에 집중도가 더 좋은 덕도 있다. 기대에 찬 열 네 개의 눈동자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자에게 심심深心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 어떤 격려의 말이 나올지 초롱초롱하게 기다린다.

“방으로 해산해. 이제부터 나는 미유키 카즈야와 장기를 둘 예정이다.”

사실 예상 가능할 만큼 진부한 언령이긴 하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타이밍이란 언제나 제각각이다. 해서 결코 이번을 예상하지 못했던, 유우키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은 식은땀과 함께 짜증으로 뒤덮인다. 물론 미유키도 예외는 아니다.

“..뭐 그런 말을 그렇게 근엄하게 하십니까.”

특히나 정말로 기운이 빠진 사와무라보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하루이치다. 그리고 그것은 길게 늘어진 사와무라의 탄식이 끝나기도 전이다. 언제나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방바닥을 비비고 다니던 이사시키가 그보다도 빠르게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 바람에 정말 덥다고 생각했던 방에 조금 더 후끈하게 젖어있는 공기가 넘실거리며 들어찬다.

“거기 나가는 사람들. 문은 활짝 열지 말고 나가도록 하고.”

“예이, 예이.”

제일 먼저 씩씩하게 탈출할 것 같던 사와무라가 더위에 좀처럼 움직이기 힘든 것인지 보기 드물게 굼뜬 행동을 보인다. 사실 열대야를 돌파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제야 겨우 여름의 초엽일 뿐이니까. 그러나 올해는 초엽부터 지독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끈적하고 뜨거운 서도쿄의 공기 때문에 한 걸음을 걸을 때 마다 한 사람에게 뒤쳐져버리는 것이다. 이에 제일 먼저 일어섰던 하루이치는 인내심 좋게 그것을 기다렸다가, ‘에이준군.’하고 부른다. 하지만 그 뒤에 따르는 말은 없다. 하루이치에게 있어서 그에 대한 호칭은 대부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하루이치와 사와무라를 마지막으로 복작이던 방에는 이제 두 사람만이 남고, 더해 가득 차 있던 열기도 조금 빠져나가는 듯하다. 부산하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유우키의 시선이 그제야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미유키.”

“그게 말입니다. 좀 웃을까 하고 고민 중이었거든요.”

“웃다니?”

버젓한 세미나룸, 사실 식당이기 때문에 버젓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미유키의 방보다는 쾌적한 그곳을 마다하고 매번 들어차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은 오늘도 역시 없었던 건지 그의 표정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의아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보는 유우키와는 다르게 얼굴의 모든 근육이 쉴 새 없이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을 정도로 활기차다. 결국에는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웃던 미유키가 무릎을 품듯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다리를 앞으로 쭉 내어 뻗으면서 올려다본다. 웃음을 잔뜩 담은 미유키의 얼굴에 불만은커녕, 아까보다 조금 누그러진 것 같은 표정의 유우키는 말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상대의 피곤함이 순간에 날아간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낡은 것 말고 다른 수법을 써 봐요. 나한테도 그렇고요. ‘장기 둘래?’ 같은 세리후台詞는 말고요. 그러다가 곧 들키고 말겁니다, 테츠상.”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곳은, 자신의 책상 옆에 비스듬하게 선 상대의 장기판 위다. 언제부턴가는 이 방에서 나간 적도 없었다. 그건 오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 덕에 옆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손의 감각만으로 허공을 더듬어 그것에 닿은 미유키는 부르튼 손가락으로 장기판을 쥐어 잡고 나서 당긴다. 부르르 바닥을 긁으며 끌려나온 장기판은 미유키의 앞에 반듯하게 놓인다. 항상 하던 대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던 유우키는 모든 것이 고르게 정돈되고 나서야 미유키를 마주하고 앉는다. 무엇보다도, 모처럼만에 웃는 얼굴로.

미소 짓는 얼굴을 훔치듯 흘긋 본 미유키는 유우키가 앉는 동안 끄집어낸 초록색 장기짝 통의 뚜껑을 열고 홍을 잡아 쥔다. 미유키 카즈야 외에는 그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한漢의 포包가 가장 먼저 비장하게 신비자나무의 위에 오른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한은 유우키의 나라였다. 이제 그 홍색의 장기짝 들이 미유키의 손에 쥐어진 다는 것을 아는 건 오로지 유우키 뿐 이다.

“사실 들킨다거나 그런 건 별로 상관없어.”

다른 장기짝들이 판에 우르르 판에 쏟아지기 전에 먼저 유우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결코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 탓에 불현 듯, 미유키는, ‘이제 그럴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다.’던 덤덤한 목소리를 한번 떠올렸다.

 

*

 

청량한 마찰음이 끊긴 것은 생각보다 야심한 새벽이었고, 비단 그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이미 잠들었어야 할 미유키의 룸메이트들은 그 이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유우키는 다시 장기판을 그 방에 놓아둔 채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마 조금 더 늦은 취침의 탓인지 유우키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동은 트고 있었다. 새벽의 어스름이 물러가기 직전이고 아침이 밝아오기 직전이다. 꽤나 찌뿌둥하게 뭉쳐있는 근육 탓에, 깍지를 낀 채로 손바닥을 뒤집어 하늘로 펼치면서 고개도 젖혀보던 유우키가 움직임을 멈춘다. 반팔의 셔츠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여름 기분을 낸 미유키 카즈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굿모닝입니까, 테츠상?”

“좋은 아침이다. 미유키.”

똑같이 깍지를 낀 상태로 축 늘어져 에메랄드빛 살을 가리고 있던 미유키의 맞잡은 손이 풀리고 나서 곧게 가로 뻗어진 난간손잡이 위에 얹힌다. 그리고 엉덩이를 쭉 내빼고, 턱을 손등 위에 올린 채로 유우키를 내려다본다. 언제 봐도 걸작이다 진지한 저 얼굴은. 어쨌든 장난스러움이 디폴트인 미유키로서는 절대로 풍겨낼 수 없는 느낌이다. 주름진 미간으로부터 v자 모양으로 구부려 올려 진 유우키의 눈매부터 찬찬히 살피고 내려간 다음 다시, 시선을 맞춘다.

“테츠상의 피곤한 얼굴은 늦게 잔 탓입니까, 아니면 멈출 수 없는 초楚나라의 패전 때문입니까?”

“아마도, 둘 다 아닌 것 같은데. 특히 패전에의 통탄은 하지 않아. 언제고 전세는 역전되기 마련이야.”

“그러면요?”

“너를 올려다보고 있는 탓이지. 내려와, 카즈야. 나와 아침 산책하자.”

가건물이 주는 위태로움은 이제 없다. 벌써 3년째 함께하고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집보다도 튼튼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숙소의 한켠에 자리하고 있던 미유키에게 손짓을 한다. 미유키는 예상치 못했던 유우키의 제안보다도 저를 부르는 ‘카즈야’라는 목소리에 잠시 놀라는 것 같은 얼굴을 했다가 이내 푸슉 웃음 섞인 숨을 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내려갑니다.”

소란하게 움직이는 일이 별로 없던 미유키가 아래층에 들릴 정도로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복도를 쓸며 달린다. 허나 금방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부탁도 하지 않은 미유키의 신발을 미리 꺼내어 바닥에 곱게 내려놓은 유우키는 뒷짐을 지고 선다. 걸쳐 입을 옷이라도 들고 나올 미유키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양새다. 허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단 몇 초 만에 바로 직전의 모습 그대로 유우키의 앞에 섰다.

“땀 흘리면 추울 수도 있으니 옷을 챙겨서 다시 나와.”

“여자 친구 챙기는 것 같은 대사도 하지 말아요. 나 참, 괜찮습니다. 원래 산책은 가볍게 하는 거예요.”

“여자 친구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같아. 그리고 산책은 채비를 하고 떠나는 거다.”

“지금 하는 말 전부다 과합니다. 으와 왕고집. 그냥 안 가면 아침 연습으로 직행해야 한다고요. 그냥 가요.”

다행히도 미유키가 먼저 유우키의 팔을 잡아 끈 탓에 걸음은 이미 숙소의 반대방향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의 실랑이는 사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지 않다는 조건 하에서는 비교적 빈번한 것이다. 융통성의 왕인 탓에 미유키가 매번 져 주고는 있지만 사실 다수는 그가 옳다. 어쨌거나 겨우, 미유키의 말처럼 장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불러낸 유우키는 익숙한 듯 학교 밖으로 걸음을 걷는다. 러닝 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조금 느린 것 같은 유우키의 걸음에 비해, 반대로 평소보다는 더 빠른 미유키의 걸음은 곧이라도 엇나갈 것 같은 박자다. 그걸 알아채고 속도를 맞춘 것은 미유키다. 뿔테안경을 한 번 검지와 중지로 밀어 올리며 여유로운 걸음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때 유우키는 고개를 돌려 유심히 미유키의 옆얼굴을 본다.

“눈이 많이 안 좋다고 말했던가?”

“아. 그건 꼭 그렇지도 않아요. 없어도 괜찮은 정도까지 시력이 올라올 때가 많아요.”

한번쯤은 이미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말인데도 분명 처음 나누는 이야기다. 유우키의 말처럼 이미 좋아하고 있는 사이라고는 해도 사실,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는 야구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개인의 색깔을 지운 야구가 두 사람을 가장 단단히 엮은 고리인 것이다. 더욱이 올해가 시작되기 전 까지 둘은 아무 사이가 아니기도 했다.

“그렇다면 굳이 불편한 걸 몸에 달고 있을 필요가 있나.”

“그게... 뭐랄까요. 테츠상도 알다시피 주변 신경 쓰는 게 몸에 밴 보직이다 보니까요. 특정한 프레임으로 붙잡아두는 게 집중할 때 도움이 돼요. 평소에 쓰는 안경도 마찬가지고요.”

“무..”

무슨 소리지? 하는 말이 나올 법한 타이밍인데 유우키는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이미 알아들은 후였다. 그리고 미유키 역시 유우키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그리고 왜 멈췄는지를 알아챘다. 항상 부연 설명이 필요했던 유우키였는데도, 설명이 필요 없는 엄청나게 빠른 이해인 탓에 미유키는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 한 것을 겨우 멈춘 것이다. 사실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유우키가 재빠르게 멈추면서 지은 표정은 생각보다는 귀여운, 고등학생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 걸음을 더 걸었을 때 유우키의 뒤로 새빨간 불꽃이 터져 올랐다. 이번에는 미유키의 표정이 바로 좀 전의 유우키처럼 터져나왔다. 동그랗게 뜬 눈이 유우키 너머에 있는 것에 고정된다.

“..우..오왁 이거 뭐야.”

“음?”

종종 자신이 걷던 길이라 분명, 희한한 것이 튀어 나올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미유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유우키는 그제야 미유키가 탄성을 터뜨린 것이 무엇인 줄을 알았다.

“엄청 크다. 불꽃 터진 거 같네.”

“맨드라미야.”

혼잣말을 하려는 미유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더니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의문부호로 휩싸인 표정을 짓는다. 유우키는 그를 한번 쳐다보고 나서 햇살을 받아 유독 더 붉은 맨드라미에 시선을 던졌다. 적어도 미유키는 난생처음 본 식물이 타는 듯한 그 위용을 자랑하며 담장 너머로 불쑥 솟아있다. 확실히 처음 이 꽃을 본 사람들은 놀랄 만하다. 미유키는 모르겠지만 매년 여름이 그 온도를 올려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맨드라미는 크게 꽃을 피워 왔다. 생각 필요할 때 마다, 생각을 하지 않기 유우키는 항상 이 길을 걸었다. 붉은 한漢을 쥐고 있던 어제의 미유키를 한번 떠올리면서 맨드라미를 바라보던 유우키가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다는 듯 그것은 언제나처럼 여전하구나 하고.

“어떻게 알아요?”

“앞집 정원에서 키우고 있어. 벌써 꽃을 피우다니, 여름이 아주 가까이에 왔나 보군.”

단숨에 계절이 당겨져 버린 것 때문인지 미유키가 가볍게 닫고 있던 입술을 꽉 깨물어 문다. 좀처럼은 보이지 않는 불편한 얼굴이다. 생각보다 가벼운 잠시간의 침묵이 “테츠상 저.”하는 미유키의 목소리에 의해 깨진다. 그리고 잠시간의 뜸을 들인다. 항상 곧게 펴고 있던 눈썹을 구부리면서다. 하루이치와는 반대로, 호칭 후에는 반드시 내용을 끌어내던 미유키가 웬일로 말을 멈춘 거다. 그리고는 이을 생각이 없다. 혹은 이을 수가 없는 것이다.

“카즈야.”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떤 말이 이끌려 나오던 간에 아니면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실 상관이 없다는 것 같은 목소리로 잘 부르지 않던 이름을 부른다. 비자나무 위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기다가 온기를 더하여 다독이듯 말한다.

“걱정 마. 초楚는 승전 할 때 까지 한漢을 두드릴 거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요?”

“아마도. 한漢이 초楚를 두드리겠지.”

유우키의 새까만 눈동자는 대국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임을 확신하는 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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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전에 약속했던 사나미유......ㅋㅋ

사나다 슌페이x미유키 카즈야

for kirru

 

 

“적어도 꽃받침 하고 쳐다보는 건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내가 꽃인 건가?”

“...말이 되냐.”

하하. 웃음소리에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고개가 기어이 돌고, 넓은 가로줄 틈에 갇혀있는 두 눈 사이에 진한 주름이 잡힌다. 그 탓에 송골송골 잘게 맺혀있던 땀이 크게 방울져 수직하강하기 시작한다. 뚝, 뚝 굵게 굴러 흐르던 땀방울이 몇 번이나 속눈썹을 건드리고 지나가자 미유키의 눈꺼풀이 감기고 만다. 그리고 그 탓에 곧장 땀방울로 향하던 손가락들은 콕 하고 고글에 막힌다. 이건 도저히 닦아낼 재간이 없다.

“어하하하. 미안. 불편해?”

“......그래. 거기다가 지금 말이야. 변한 게 없어, 사나다.”

변한 것이라고는 가득 뺨을 쥐고 있던 양 손이 턱 아래로 끌려 내려왔고, 손바닥이 손등으로 대체된 것 정도다. 여전히 샐샐 웃는 낯으로 쳐다보는 모습을, 빠르게 닫혔다 열리는 눈꺼풀 때문에 더 이상 쳐다볼 수 없게 되자 쪼그리고 있던 몸을 곧게 세우면서 숨을 한 번 삼킨 미유키가 고개를 젓는다. 직후, 조금 해진 하얀 반창고가 마디마다 감긴 손가락 다섯 개가 포수마스크를 덮는다. 구부러진 손가락에 날카롭게 각이 서고 오랫동안 얼굴을 덮고 있던 마스크가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낸다. 그것을 신호로 아담하게 접혀있던 사나다의 몸이 탄력 있게 펼쳐진다. ‘가봐, 후루야. 아이싱 하는 것 잊지 말고.’ 한 손 가득 마스크를 든 팔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면서, 마주 서 있던 후루야에게 팔랑팔랑 손짓하자 그는 ‘예.’하는 짧은 대답과 허리숙인 인사만 남긴 후 총총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후배가 어떤 모습으로 등을 돌렸는지 미처 챙기지 못하고 얼굴로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기에 바쁘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더위가 관통하고 하고 있는 탓이다. 습기까지 한껏 머금은 여름공기에 미유키의 팔이 뿌리치듯 아래로 떨어진다. 시원한 그늘을 두고 굳이 뜨겁게 볕이 드는 펜스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나다는, 바로 그때 성큼 미유키의 곁에 선다. 강한 햇살 탓에 챙 아래로 짙게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은 이상하게도 지친 기색이 없다. 그게 괘씸한 것인지 미유키의 얼굴에 여러 갈래로 주름이 뻗는다.

“도와줄게.”

“오, 노 땡큐. 하지마.”

비가 내릴 듯 말 듯 하다가 몇 번이나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꽤나 오래 가물어있는 땅과는 반대로 숨 쉬기 힘들 만큼 습한 공기 탓에 평소와는 다르게 예민한 반응이다. 선뜻 도와주겠다고 말을 건넨 것을 단박에 거절해버린다. 그런데도 사나다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그리고 마치 익숙한 일인 양 자연스럽게 등 뒤에 바짝 다가선다. 좀 전의 말은 듣지 못한 사람처럼. 사나다의 망설임 없는 손놀림에 찰칵, 굳게 걸려있던 프로텍터의 버클이 제 자리를 이탈하면서 늘어지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미유키의 어깨도 푹 꺼진다.

“그, 가끔.”

“음?”

“내가 진짜로 거절하는 건 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 같아. 어때?”

왼손으로 어깨에 걸려있던 프로텍터를 벗겨내고 나서 어깨 너머로 살짝 시선을 던진다. 미유키의 말에, 버클이 빠져나가고 빈손이 된 사나다가 제 손을 맞잡고 멋쩍은 얼굴로 웃으며 난색을 내비친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고 미유키의 손에 있던 마스크를 채가더니 샐 웃음 짓는다.

“이야 이거 무겁다. 미유키 힘 좋아~ 그치?”

“딴소리 하지 말고. 알겠어?”

“이런, 안 통하네.”

능청이다. 대답은 하지 않고 그새 양 손으로 잡은 마스크를 제 얼굴에 가져다 대어 프레임 사이로 미유키를 곧게 쳐다본다. 길게 옆으로 누운 줄 사이에 동동 떠 있는 눈동자라니, 익숙지 않다. 곱슬거리는 젖은 머리카락 한 뭉치가 눈을 덮으니 웃음기가 잔뜩 서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매가 어딘가 모르게 처연하다. 결국 미유키는 한소리 하려고 벌렸던 입술을 닫고 만다. 종전엔 볼 수 없었던 그림인 탓에 팔짱을 끼고 어떻게 하나 두고 보려는 것으로.

“통할 리가. 타교생 에이스가 주전포수 곁에서 얼쩡거리는 거 되게 위험한 그림 아닌가싶네만.”

“그런가.”

하지만 전혀 고민하는 기색이 없다. ‘그런가.’는 어디까지나 자주 하던 사나다의 말버릇일 뿐이고 별 고민 없는 얼굴로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에는 밴드를 걸 곳을 찾지 못하여 관둔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끌어 내리니 금세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 다시 동동 떠오른다. 그리고 성큼 미유키의 앞으로 다가선다. 코앞에 선 사나다를 흘기듯 올려다본 미유키가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얼굴로 ‘왜?’하고 입술을 둥글게 말고 한발 물러선다.

“데이트 신청도 처음에는 진짜로 거절했잖아.”

“그건...그렇긴 하지만.”

실은 사나다의 뒤로 다글다글한 야수무리가 한가득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유키의 대답은 건성인데다가 눈은 바쁘게 그들을 스캔한다. 눈동자가 저를 보지 않고 먼 곳을 훑고 있는걸 알아챈 사나다는 마스크를 들고 있던 손을 쫙 편다. 그리고 그것은 퍽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낙하했다. 0.5kg의 마스크가 떨어지면서 미유키의 발을 강타했는지 눈썹이 꿈틀거리며 구부러진다. 사나다의 손이 그대로 미유키의 얼굴을 감싼 것은 그가 비명도 터뜨리기 전이다. 강제성을 띈 스킨십이 불편하지도 않은지 일언반구의 불평도 없이 미유키가 먼저 사나다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나게끔 입을 맞춘다.

“지금은 해주는 것만 받아.”

“안 되는데.”

미유키가 그랬던 것처럼 사나다는, 뽀뽀라고하기도 무색하게 가볍게 입술을 댔다 떼더니 찰나를 두고 다시 입술을 대어 문다. 피곤한지 핏기 없이 조금 갈라져있던 미유키의 입술이 젖어 붉게 오른다.

 

*


 

손등을 엎어 숟가락을 쥐고 있던 사나다에게서 그것을 빼내어, 바로 고쳐들게 도운 미유키가 잔뜩 쏠린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유우키와 눈이 맞았다. 덕분에 거침없이 움직이던 손이 뻘쭘하게 거두어졌다. 다소곳하게 손을 무릎에 올리고 나서 보는 듯 마는 듯 앞에 앉아있는 팀원들의 표정을 빠르게 훑었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하하... 손님이잖아요.”

“뭘 지적할지는 알고 있군.”

“그렇다고 손님 밥숟가락까지 챙기는 건 이상하지 않아요? 치다꺼리가 도를 넘은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의 배로 의구심을 가득 담은 사와무라가 유우키의 말에 곧장 이으며 길게 저 앞을 가로막은 식탁을 통 쳐낸다. 차마 큰소리가 나게 내려치지는 못하고 가볍게 올라 있는 수저만 들썩일 정도로. 그런데 그마저도 후루야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잠자코 앉아 있다가 쿠라모치를 가로질러 팔을 뻗었다. 거의 일어설 뻔 한 사와무라의 몸짓은 그렇게 저지됐다. 순간 둘 사이에서는 불꽃이 튀고 그 탓에 다른 이들의 관심은 사나다로부터 옮겨갔다. 사실 제법 곤란하던 참이었다. 토도로키를 비롯한 팀원 모두가 일찌감치 돌아간 마당에 타교생의 신분으로 발언을 할 명분이 없던 사나다가 잠자코 있다가 미유키가 고쳐준 숟가락을, 이제는 흰 쌀밥이 수북이 놓여있던 흔적만 남아 어느덧 두어 숟갈밖에 남지 않은 식판 위에 아쉬운 듯 머뭇거린 다음에 올려놓았다. 이제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옆에 앉아 눈만 흘기는 미유키 뿐이다. 마주 앉아있는 쿠라모치와 그 양 옆의 사와무라, 후루야를 지켜보면서 사나다까지 챙기는 것이 머리 아픈 것인지 그의 시선은 곧 몇 번 지그재그를 그리다가 제 식판으로 떨어진다.

“아이고, 골치야.”

“활기 넘치네 세이도.”

“넘쳐서 탈이지.”

언제나 있는 고충인 것 마냥 가벼운 한숨만을 더해 말을 마쳤다. 그러나 그마저도 영락없는 세이도 학생의 얼굴이어서 사나다는 미유키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하고 웃음소리가 호쾌하게 터졌다. 미유키를 바라보는 사나다의 시선은 마치 누구라도 알아 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귀엽네’하는 저의 감상을 가득 담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겨우 분산되었던 시선이 다시 두 사람에게로 쏠리고 만다. 이번에는 쿠라모치가 팔짱을 풀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뱅뱅 만다.

“남의 집 앞마당에 쳐들어와서 팔짱끼고 마누라 훔쳐 본 외간남자를 누가 달가워하겠냐. 엉?”

“마누..뭐라고? 이상한 비유 하지 말아줄래? 와 이거 미치겠네.”

“그러면 우리학교 두 번 염탐 오는 것은 어때, 좋지?”

예쁜 여자는 없지만. 하고 덧붙이니 잠깐 빛나던 쿠라모치의 눈이 다시 게슴츠레 해 진다. 혜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고작 이런 것이니 미유키가 죽을 것 같은 모양인지 이마를 짚고 고개를 내젓다가 안 되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고무피스 탓에 묵직하게 바닥에 걸린 의자 다리가 부르르 몸을 떨며 굉음을 낸다.

“아알~겠어. 자. 그러면 불편한 손님은 치워버리고 올 테니까 남은 정리 좀 부탁해들.”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어련히 따라 나오겠지 싶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판을 들고 식당 홀을 나서는 미유키를 올려다보던 사나다가, 여전히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부원들에게 손 인사를 건네며 뒤늦게 일어섰다.

미유키가 의자 등받이에 걸어두고 미처 챙기지 못했던 장갑을 챙겨 곧게 포개며 흐뭇한 얼굴로 나서던 사나다의 뒤로 다급한 부름이 들렸다. ‘아까, 운동장에서!’ 뒤따라 나오던 사와무라가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린 것이다. 미유키가 나선 길을 그대로 곧게 밟아가던 사나다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씩씩거리는 소리라도 들었나, 잠자코 서서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몸을 홱 돌린다. 그 바람에 벨트 밖으로 비쭉 흘러나와있던 유니폼자락이 나풀 날렸다. 생각이 엉킨 것인지 다음 말을 재빠르게 이어붙이지 않는 사와무라를 향해 사나다가 입술께 손가락을 길게 올리며 ‘shh’소리를 내고 웃는다. 모종의 거래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인 채다.

“용케 말 안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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