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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0  [사나아라] 5
  2. 2013.11.19  [사나아라] 4
  3. 2013.11.07  [사나아라] 3
  4. 2013.11.06  [테츠미유] 소란
  5. 2013.11.05  [사나아라] 2

선뜻, 꽤나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호의에 사나다는 놀라는 얼굴을 한다. 구면이라 하기는 너무 스치듯 만난 인연이고, 초면이라 하기는 만난 적이 있으니- 사실은 그 어느 쪽에 치우친 것보다도 애매한 사이이다. 그런 아라키로부터의 제안이다. 아라키 감독이 단지 선량한 사람인 것인지 혹은 자신과 엇비슷한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알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나쁜 타이밍에 주어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번뜩 머릿속에서 터졌다. 사나다는 말보다도 먼저 차의 뒷자리 문을 잡아당겼다.

예의 바른 학생들처럼 거절하는 척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감사히 얻어 탈게요.”

사나다군, 잠깐.”

?”

그쪽이 아냐, 그쪽이. 어른이 운전할 때에는 옆 좌석이야. 모르는구나?”

아라키 감독이 다시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오른편으로 톡톡 손짓을 날렸다. ‘이런.’ 그의 가벼운 손짓에 시선을 빼앗긴 사나다가 쯔 하고 혀를 찬다. 그의 손이 스쳤던 중지가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축축했던 자신의 손과, 차던 아라키 감독의 손이 닿은 직후의 바로 그 느낌인 것이다. 사나다는 갑작스럽게 땀이 차 오른 손바닥을 옷자락에 한번 비비고 나서 차체 뒤 쪽으로 빙 돌았다.

 

*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정말 잘 먹네? 왕성해. 그래서 몸집이 상당한 건가.”

하하 웃음소리까지 내면서 턱을 괴고 바라보는 아라키에, 햄버거를 입 앞 까지 가져갔던 사나다의 손이 멈칫 한다. 한껏 벌렸던 입을 얌전히 다물고 나서 두 개째의 햄버거가 너무했나 하는, 조금은 뻘쭘한 표정으로 아라키를 쳐다봤다. 그는, 엄청 괜찮은 그림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듯한 얼굴로 마저 먹을 것을 부추겨 올리는 손짓을 한다. 애 취급.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딱히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남부터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생각에 햄버거가 갑자기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기껏 얻어먹는 것이기에 사나다는 야무지게 크게 한입 물었다. 그가 우물우물 식사중인 것과 상관없이 아라키 감독은 그에게 대답을 요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래서, 신주쿠에는 구장 때문일 테고. 가야 할 곳은 어디?”

코엔지高円寺. 근처에 살아요.”

걷기에는 제법 멀구나. 난 반대방향인데, 누마베沼部.”

사실 내 쪽이 좀 더 멀어, 한참이지? 아라키 감독에 대한 첫 인상이 꽤나 신중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엄청나게 장난꾸러기 같게 느껴지는 것이다. 들고 있던 햄버거를 모두 입에 밀어 넣은 사나다는, ‘그렇군요.’ 따위의 동조 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확실히 오늘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라키 감독은, 진중하다기보다는 조금 붕 뜬 느낌이다. 그것은 사나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이다. 그는 꽤나 차분한 분석가 타입 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 이미지와는 엇나가고 있는 중이다. 덕분인지 탓인지 그가 사는 곳 까지 엉겁결에 알게 되었지만은. 물론 그것은 그의 학교 근처일 테다. ‘누마베까지는 삼십분 이상이려나.’ 돌아가는 그가 운전대를 잡은 모습을 상상하며 왼쪽으로 보냈던 시선을 아라키에게서 멈췄다. 다시 봐도 꽤나- 엷은 것 같으면서도 잊기 힘든 인상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이보다 훨씬 더 젊고 멀끔하게 생긴 탓이다. 사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떠올렸다는 생각에 마른 입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는 한층 나른해진 눈매가 그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어때. 괜찮아?”

아까부터 계속 물어보고 있는걸요. 하지만 사나다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차비를 쥐어주기보다 역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를 해줄 것 같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사실 그가 사나다에게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내는 것이, 사나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묘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내가 메일 주고받을 것 같은 얼굴이니?”

.”

마지막으로 남은 콜라를 쪽 빨아올리던 사나다가 짧게 기침을 토했다. 그대로 눈을 크게 껌뻑이고 나서 고개를 홱 들었다. 명함, 들켰나. 난처함이 뚝뚝 흐르는 얼굴을 감출 길이 없어 손바닥으로 얼굴 반을 가려 막은 사나다와는 다르게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는 아라키는 상당히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사나다를 곧게 쳐다보고 있다. 다행히 볼썽사납게 분출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마실 의욕이 뚝 떨어지게 된 상태의 콜라컵을 손에서 놓았다. ‘상당히 허를 찌르는구만.’ 하지만 그것이 별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확실히 아라키는, 변명을 덧붙여야 할 상대가 아니다. 불현 듯 대회가 바로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생각해낸 사나다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한번 훔쳤다. 그러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메일 보내도 돼요?”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전송예고를 아라키 감독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역시 ?’하고 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나다는 미간을 세게 찌푸린 채로 웃었다. 그러나 어른의 행동이란 아직, 사나다의 예측을 한참 벗어나는 것이었다.

문자로 하렴.”

아라키는 이번에도 예상치 못했던 호의를 담아 선뜻 손바닥을 내 보이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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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아라] 5 :: 2013. 11. 20. 05:56 2D

 

각형주철 앞에 한참동안 쭈그리고 앉아있던 사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무릎을 지탱하고 있던 팔꿈치에 힘을 주었다. 이제는 미련 없이 일어나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참이다. 읏샤 일으킨 몸뚱이를 어슷하게 세우고 한 팔로 허리를 짚고 나서 다음에 대한 궁리의 뜻으로 눈동자는 왼쪽을 향했다. 그때다. 꽤나 훤한 시야였다고 생각했는데 답답한 무엇인가가 그것을 막아섰다. 아니, 정확히는 비집고 들어왔다. 8강을 단 하루를 남기고 생긴 틈이다.

얼라.”

, 야쿠시의 사나다.”

교명을 앞에 붙이고 스스로가 되짚어 보는 듯 한 느낌으로의 호명은, 예의 그 아라키 이치로였다. 그 부름과 같이 좀 전 까지 창틀에 팔을 걸치고 턱을 얹어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나다가 자리에서 일어남으로써 둘의 위치는 정 반대로 바뀌어 있는 상태다. 사나다가 고지를 점했다. 허나 물리적 위치를 제외하면 그 어느 것에서도 사나다가 우위인 게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챈 사나다는 어려운 상대를 어려운 시기에 다시 만났다는 생각에 가볍게 말아 쥔 손을 입술에 댔다. 물론 꽤나 만나고 싶어 하긴 했지만, 이것은.

안녕하십니까, -”

라키 감독? 하하, 마운드 아래에서의 너는 생각보다 알기 쉽구나.”

생각보다는 무척 짧은 인터벌이다. 준비 없이 그와 마주쳤다. 더군다나 야구장이 아닌 시가지에서의 만남이라는 것은 아직 상상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 허나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 그나, 사나다나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에 생각보다는 괜찮은 그림이다. 자신의 말을 가로챈 아라키 감독에게 조금 놀란 얼굴을 보이는 것 까지 전부 포함해서 그렇다.

물론 예상 밖의 행동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아 저는.”

눈동자를 살짝 오른쪽으로 움직였던 아라키 감독이 재빨리 사나다와 눈을 맞췄다. 그것이 워낙 순식간이었던 데다가 마지막 물음에 대한 대답이 버릇인 탓에, 사나다는 다시 발밑을 내려다본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와, 에너지가 이 안쪽으로. 이렇게 말이죠.”

손가락 두 개로 동전을 만든 다음에 아래쪽으로 쭈욱 떨어뜨리는 시늉을 한다. 그의 움직임은 온전히 각형주철로 향했다. 그랬더니 단번에 이해한 것인지 아라키 감독은 망설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만났던 내내 웃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눈이 감길 정도로 활짝 웃는 것은 처음이다. 그 탓에 설명을 이어가려던 사나다는 그것을 멈추고, 조금 놀란 얼굴로 그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엄청 유쾌하게 웃었네, 지금.’ 하지만 그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군의 최고 장수가 위기인 상태인가? 요컨대 고립무원孤立無援 정도.”

우선 최고가 아닌데, 그렇게 반박하려던 사나다는 뒤따라 나온 성어에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을 그치기 위해 얼굴을 조금 찌푸린 아라키 감독은, 의외의 제안을 툭 던졌다.

에이스를 건져 올리는 것이 나중에 굉장한 변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나다. 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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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아라] 4 :: 2013. 11. 19. 03:10 2D

 

아라키 이치로?”

사나다의 친근한 손짓에 조금 놀라는 듯 하더니 금방 그를 쳐다보고는 그가 미처 부르지 못한 그의 이름까지를 덧붙여준다. 그러니까 사나다가 양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합장하며 웃는다. 쌍꺼풀도 모자라 눈가에 잔뜩 주름이 잡힌다. 매우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이 됐다.

. 맞아, 그런 이름일 거예요. 역시 기자누나!”

그 감독 피부가 엄청 좋았? 그런데 명함은 왜? 그 사람한테 볼일 있어요?”

대답 없이 곧장 가방 안을 뒤적거리면서 물음 가득 한 얼굴로 되묻는다. 그녀는 이미 그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은 듯 하다. 아마 야쿠시의 토도로키 감독이었다면, ‘명함~?’하고 길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이상한 얼굴을 했을 게 분명하다. 단지 사나다는, 아라키 감독이 진학교의 선생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었을 터다. 그런 학교라면 명함 한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았고, 그리고 아마 이 기자라면 그것을 건네받았을 것이다. 예상이 맞았던 것인지 그녀는 깔끔하게 하얀 명함 한 장을 가방 안에서 건져냈다.

아 그, 딱히 용무가 있다기보다는.”

그럼 그냥 있냐고만 물어본 거예요?”

그 쪽도 아니다. 사나다는 일단 고개부터 젓고 나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막상 무례한 부탁을 하기는 했는데 둘러댈 명분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미 시야에 걸린 하얀 종이쪼가리가 제법 탐이 나는 터라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뇨. 그거 나 줄 수 있어요?”

줄 수는 있지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직은 아무 일도.”

사실 앞으로도 아무 일도 없을지는 모르지만. 머릿속으로만 글자들을 나열하면서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더니 별 다른 질문을 덧붙이지 않고 그것을 건네주었다. 아마 토도로키 감독의 언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해서 사나다는 생각보다 쉽게 그것을 손에 넣고, 다시 한 번 깍듯하고 느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나서 뒤를 돌아 경쾌한 걸음을 걸었다.

하지만 걸음은 금방 느려졌다. 고개를 푹 꺾고 이미 손에 묻어있던 흙먼지로 인해 지저분해진 명함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답지 않게 딱딱하고 투박한 글씨에다가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디자인의 명함을 만들었다. 심지어 메일주소라니, 우와 구식. 사나다는 길 한가운데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는 발걸음과 함께 웃음이 뚝 그쳤다. 설마 아직도 구형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터인데, 이러다가 기껏 졸라 받은 명함이 아무짝에 쓸모없어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얻어내기엔 무리다. 모로 보나 명함도 썩 자연스러운 그림이 아니었는데 휴대전화 번호를 묻는다면 그건 매우 해명하기 힘든 행동이었을 터다. 그리고 사실은, 그 명함이 왜 가지고 싶었는지는 사나다 본인도 미심쩍은 차 였다. 그저 기자를 보자마자 떠오른 말일 뿐이었다.

도립 오우야. 감독.”

데이터를 읽히는 것은 올해 들어 아주 빈번한 일이었는데 그와의 만남이 조금 이상했다. 아니 모양새는 결코 전례와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다만 사나다는, 그 남자에게서 본적 없는 무엇인가가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굉장히 시각적인 동시에 운동적이었다. 마치 강한 인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것이 본인에게만 해당 되는 것인지, 아니면 평범해 보이는 그 남자가 정말로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느낀, 처음의, 강한 충동인 것이다.

 

*

 

아라키 감독은 다시 한 번 엄지를 밑으로 당겨 화면을 밀어 내렸다. 손가락 움직이기를 몇 번 반복하니 다시 메시지의 맨 처음이다. 꽤나 심각한 얼굴로, 한 품에 가득 안은 쿠션에 턱을 얹은 채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는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다음에 만나면 명함 한 장

더 부탁드려요.

            잃어버렸나요

. 야쿠시고교 사나다군이

가져갔어요.

            사나다? 학생 말인가요?

. 그러니 다시 한 번 부탁

합니다 ;Д;

            알겠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그러도록 하지요.

 

대체 타교의 학생이 무슨 용무로 자신의 명함을 가져간 것일까. 심지어 그것은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 경기를 바로 코앞에 두고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기사 두 사람이 조우하여 이야기를 나눈 날로부터 지금은, 양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숫자이긴 했다. 어찌되었던 간에 갑작스러운 여기자의 문자는 아라키 감독에게 꽤나 알기 어려운 의문을 남긴 것이다. 혹여 염탐일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런 것이라면 그 대상은 본인이 아니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름과 메일주소, 학교의 전화번호뿐인 종이쪼가리를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심지어는 메일도 한 통 와 있지 않은 것이었다. 잠자코 앉아서 궁리해 보기를 이십여 분. 아라키는 이내 휴대폰 화면을 소파에 엎었다.

알 게 뭔가.”

좀 전과는 아주 다르게, 그의 얼굴은 금세 홀가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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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길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던 땀방울이 턱에 맺혔다. 손으로 몇 번을 닦아내도 그것은 여전히 반복되었기에 내내 계속 되었던 오전 연습으로 인해 흠뻑 젖어 무겁게 내려앉았던 유니폼자락을 겨우 가슴께 걷어 올렸다. 그로 이마를 문지르기 위해 잔뜩 목을 구부리던 미유키가 그를 도중에 멈추고 웅성거리는 무리 쪽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탓에 제 어깨에 걸린 수건을 그에게 내밀었던 유우키의 고개도 같은 방향으로 돌았다. 수건의 무안함을 뒤로 한 채 미유키는 앞을 제일 가깝게 가로막고 있는 카네마루의 어깨를 짚었다. 대체 무슨 소란이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카네마루가 갑작스러운 손길에 흠칫 놀라며 뒤를 돎과 동시에 그 주위에 있던 여럿이 또 다른 웅성거림을 만들어낸다. 그럼과 동시에 그들에는 조금의 틈이 생긴다.

어이 거기 소년들. 비품 정리 마쳤어? 무슨 구경났냐.”

. 미유키 카즈야다.”

너 임마 자꾸 풀네임으로 부르-?”

가장 심장부에 있던 사와무라를 타박하던 미유키의 시야가 터짐과 동시에 입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맙소사. 흙으로 지저분한 손이라며 좀 전까지 유우키에게 고개를 내저었던 그 손 그대로 입을 덮는다. 그런 그의 반응에, 줄곧 미유키만 쳐다보고 있던 유우키의 시선도 탈의실 내의 좀 더 깊은 곳까지로 향한다.

, 무슨 일이야.”

물음과 걸음이 동시에 였다. 유우키 역시도 층을 만들고 있던 부원들을 헤치고 조금 더 가깝게 미유키의 곁으로 갔다. 미유키의 비명을 끝으로 가건물 안은 제법 조용해졌으나, 그 중에도 여전히 갸릉갸릉 소리를 내는 것이 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하루이치의 양 손 보다는 조금 커 보이는 고양이다. 매끈한, 검은 턱시도를 차려입은 그는 길길이 날뛸 만큼 늘씬한 성묘는 아니었으나 저를 둘러싼 사람들과 같이 딱 과도기쯤 걸쳐있는 정도로 보인다. 아마 날뛴다면 양 손으로는 조금 버거울 만큼 자란 것 같다. 입에 물려있는 것은 누구의 글러브인지 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물음이 먼저 떠오른 유우키의 궁금증은 의외로 쉬이 해결되었다.

젠장완전 잊어버리고 있었어.”

난색의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싫은 표정이다. 어디서 흘러들어온 도둑고양이가 아닌 모양이다. 미유키가 잠시 멈췄던 걸음을 마저 더 걸어 그 고양이한테로 다가선다. 그를 빤히 지켜보던 고양이는 물고 있던 글러브를 놓는다. 그러고 나서 꼬리가 금방 빳빳하게 섰다가 이내 그 끝이 살랑살랑,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쪽의 호의와는 다르게 그를 내려다보는 사람, 즉 미유키 쪽은 훨씬 더 경계태세다. 주인을 찾았기 때문인지 와해되기 시작하는 무리 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울린다.

미유키랑 고양이라니, 엄청 안 어울리는데.”

미유키 카즈야의 고양이?!”

그 웃음은 조금 먼 곳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던 료스케의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에 이어진 것은 좀 전의 타박에도 굴하지 않은 사와무라의 경악이다. 진짜로 안 어울려. 그것까지 덧붙였는데도 미유키는 그를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그럴 리가 있냐. 난 네발 달린 짐승 딱 질색이라고. 강제 위탁이었다고요.”

라고, 단지 자신의 소유라는 것에만 질색하는 것이다. 해서 그 보드라워 보이는 생물체는 그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은 확실해졌다.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입을 가린 채로 잠자코 지켜보던 유우키는 손에 쥐고 있던 수건을 다시 어깨에 걸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고양이의 앞에 섰다. 웬일로 시선이 미유키가 아닌 것에 고정이 된 채다.

누구로부터의?”

나루미야요. 나루미야 메이. 불러내서 나갔더니 준비 한 사람처럼 캐리어까지 들고 나왔어!”

그래 캐리어, 캐리어에서는 언제 빠져 나온 거지. 마침 잘 됐다는 듯 불평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껏 싫어하는 얼굴이더니,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 손을 뻗어 고양이를 집어 올렸다. 마치 핸드워머에 팔을 끼우듯 고양이의 배를 끌어안은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그 바람에 사와무라는 터지는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료스케 역시 의외라는 것 보다는,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라고 생각하는지 다시금 소리 내어 웃는 것이다.

개랑 고양이!”

마무리 운동 다 하고 또 뛰고 싶냐, 사와무라?”

고양이를 바로 저 얼굴 아래에 두고 있는 모습에 당연히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리트리버정도 되어 보이는 미유키의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삐 하고 스팀 빠지는 소리를 낼 것처럼 얼굴을 구긴 것을 보고서야 사와무라는 옆구리 옆으로 삐져나온 유니폼을 바지 안으로 구겨 넣으며 건물로부터 내달릴 준비를 한다.

참고로 글러브, 비싼 거야 미유키.”

그리고 그를 뒤따르던 료스케의 목소리는 여전히 얄궂다. 가건물의 턱을 금방 넘어 나가버리는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배에서부터 끌어올린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돌렸을 때, 유우키의 시선은 미유키의 얼굴보다 조금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은 미유키의 기척에 따라 금방 따라 올라왔다. 그리고 좀처럼 않던, 미소를 애매하게 지어보였다.

내가 보기엔 아주 잘 어울려.”

 

*

 

이름은 카게. 대단한 의미인가 했더니 양말을 음독 한 거라고, 대체 반려묘 이름을 그딴 식으로 지어도 되는 거냐고 유우키에게 따져 묻는 미유키의 손에는 여전히 고양이가 들려있었다. 흙으로 더러워진 미유키의 가슴팍에 등을 비비대는 카게는 의외로 얌전하다. 캐리어를 두고 양 팔 가득 그를 안은 것은 자의이기도 했고 유우키의 제안이기도 했다. 사실 들어가지 않으려 버둥거렸던 카게의 의지가 제일 강했지만은. 어쨌든, 그 탓에 두 사람은 교통수단 대신 발을 택해야 했다. 조금 습하지만 선선한 여름 저녁의 공기를 모두 호흡하며 시원하게 산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두 사람이 있을 때에는 좀처럼 미유키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던 유우키의 시선은 둘을 번갈아 보는 데에 바쁘다. 그는 흥미로운 얼굴로 카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참 그렇게 걷다가 조심스럽게 카게를 향했던 손은 그의 버둥거림으로 인해 저지당했다. 그렇게 가까워 졌던 것도 아닌데 온 몸으로 유우키를 거부했다. 마치 수건을 거절당했을 때처럼, 물론 그것을 미유키가 알지는 못했지만은, 유우키는 뻘쭘하게 내밀어졌던 손을 거두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미유키가 입을 뗀다.

테츠상이 고양이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 , 그렇군. 아무래도 별로 어울리지 않지?”

. 어울리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게다가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고. 아니 의외로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좋아요.”

조금 멋쩍은 얼굴이 되었는데, 미유키의 시원한 웃음 뒤에 유우키의 눈은 조금 크게 뜨였다. 뒤따라 나오던 좋아요.’에 귀가 쫑긋 선 것이다. 오랜만에 듣는 말이기도 했다. 그것이 온전히 자신을 향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래도 미유키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유우키의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은 금세, 좋은 안도감이 앉은 얼굴이 되었다. 좋아하고 있지 우리. 물론,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을 움직인 탓에 미유키는 듣지 못했다. 유우키는 어둠이 짙게 깔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작은 돌들을 밟는 소리를 들으면서 미유키의 느린 걸음에 발을 맞추었다. 냐오 냐오. 카게의 청아한 소리는 그들의 박자에 맞추어 젖어든다.

너는 의외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은데.”

예 뭐. 별로예요 아까 말했듯이. 말이 안 통하는 애들은 아무래도 조금요.”

카게가 매우 섭섭해 하는 것 같아.”

단호하게 휘어져 올라가있던 유우키의 눈썹이 조금은 수평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여태까지 얌전하던 고양이의 얼굴이 들린 것이다. 목을 길게 빼고 미유키를 올려다보는 것처럼 고개를 뻗었다가 그것을 다시 가슴팍에 묻는다. 부단히 애정을 뿜어내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아 반나절 만에 벌써 미유키에게 정을 붙인 듯 하다. 유우키는 조금 부러운 얼굴이 되었다. 어느 쪽에게 인지는 몰라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에이, 설마.”

별로라는 말은, 조금 그렇지 않아?”

완벽하게 팔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매서움이 가라앉고 부드러워진 눈매는 어쩐지 조금, 애닯다. 그래서 두 눈이 휘둥그렇게 뜨였다. 미유키는 그의 말이 자신에게 안겨있는 턱시도의 그가 아닌 바로 유우키 테츠야 본인을 가리킴을 단박에 알았다. 미유키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마, 그는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그래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씩 웃음지어 보였다.

취소. 카게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테츠상은, 좋아하는 거 알죠?”

많이 양보했다 하는 표정으로 호쾌하게 웃었다. 줄곧 바닥을 보고 있던 유우키의 고개가 그 소리에 맞춰 다시 올라왔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어둠을 넘고 미유키의 웃고 있는 얼굴을 향했다. 항상 큰 소리로 웃는 편이어서 마치 그때와 같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미유키의 얼굴은 평소와는 다르다. 어딘가 어색해 하고, 곤란해 하고, 조금은 쑥스러워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것이다. 사실 마찬가지로 유우키도 늘 다정한 편은 아니다.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언명은 그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해서 유우키도 평소와 다르게 조금 뜸을 들이다가, 조금 달리 입을 뗐다.

양말 한 쪽이 없어서 좋아, 카게.”

그걸 언제 또 봤데요.”

유우키의 말처럼 카게는 반짝반짝 매끈해 보이는 검은 턱시도에 한쪽에만 새하얀 양말을 신었다. 오른쪽 발은 미처 양말을 신지 못한 것처럼 새까맸다. 마침 그것이 미유키의 팔을 짚었다. 몽글몽글한 앞발이 얹히자 그게 간지러운 듯 이번에는 정말로, 웃었다. 유우키의 시선은 어둠속에서 여전히 곧다.

미유키 너는.”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뻗은 손이 가까워지는데도 카게는 얌전하다. 그래서 조금 더, 조금 더 하던 것이 결국에는 닿았다. 유우키가 좋아하는 새까만 그 발에.

그냥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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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츠미유] 소란 :: 2013. 11. 6. 02:09 2D

 

단번에 간파 당했다. ‘머리 나쁘지?’ 아마 그걸 함의하고 있을 터다. 그러나 기분 나쁘기는커녕 그의 눈썰미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오히려 훨씬 연장자 앞에서 멋대로 웃음을 터뜨리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사나다는 똑같이 웃어버릴 것이다. 웃음은 잘 참지 못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무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장 멈추고 미안합니다.’하고 사과했다. 훈계라도 할 셈인가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다는 얼굴로, 교설 대신-사실 그 보다는 사나다의 웃음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은 것처럼-금방 앞으로 나아갈 것 같던 몸을 완전히 돌려 사나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법 위계가 없는 감독이다. 물론 격이 없는 건 야쿠시고교의 토도로키감독에도 해당되는 것이었지만 둘에게서 받는 느낌이란 상당히 다르다. 사나다는 내밀어진 아라키감독의 손을 잡기 위해 땀이 축축이 차오르기 시작한 손바닥을 유니폼에 문질렀다. 그 사소한 행동마저도 아라키는 빠뜨리지 않고 읽어내리는 것 같다. 정적이지 않은 그의 눈길이 다시 사나다의 얼굴로 올라왔다. 불꽃이 튀는 대신 조금 습하게 차오르던 공기가 얼었다. 그보다도 얼음장 같은 아라키의 손바닥이 닿자마자 사나다의 머릿속에는 시답잖은 생각이 둥실 떠올랐다. 손이 찬사람 마음이 따뜻하다고 했지.

좋은 손이네.”

그가 가볍게 손을 쥐었다가 놓은 것이 다가 아니다. 마지막에는 사나다의 중지가 그의 손가락에 의해 훑어졌다. 찰나여서 그저 스침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라키 감독은 묘한 표정과 말을 남겼다. 그 탓에 사나다는 혼자 동동 떨어진 제 손을 살짝 쥐고, 엄지로 그 손가락을 쓸며 그는 역시 꽤나 이상한 흐름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라키는, ‘슈트의 흔적이 남았군.’이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그것은 딱히 사나다를 향한 말이 아니었고, 의도된 중얼거림도 아니었다. 아마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저 흘려보내는 타입 일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다시 인사를 건넬 것 같은 얼굴이다. 이쯤에서 사나다는 또 한 가지를 생각한다. 생각보다는 말이-많은 사람이다. 그 탓에 평소와는 다르게 시끄럽고 바쁘게 사나다의 머릿속이 굴러간다.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아라키 이치로 감독의 데이터를 바삐 입력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블록에서 떨어지지 말고 올라와.”

아라키는 이제 여유로워진 손으로 사나다의 어깨를 가볍게 톡 하고 두드렸다. 첫 만남에 가벼운 두 번의 스킨십이라. 마치 33연승을 셈할 때와 같이 그것은 즉각적으로 사나다의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라져.”

 

*

 

줄무늬가 없어질 정도로 흙바닥에서 구른 야수들보다야 훨씬 양호하지만, 조금 추워진 날씨 탓에 다리가 신경 쓰였던 것인지 연습시합 내내 삐거덕거리던 사나다 역시 결국 강습타구를 글러브에 맞으며 마운드 위에서 구르는 바람에 내내 깨끗했던 유니폼이 갈빛으로 지저분해 졌다. 비가 오지 않아 말라있던 흙먼지가 크게 일었던 탓인지 한걸음에 달려온 내야수들에게 걱정보다 더 많은 욕을 얻어먹는 바람에 뻘쭘 해 하면서 유니폼을 털었다. 토도로키 감독은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고, 사나다는 그 틈에 잽싸게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직접 맞은 것은 아니지만 손등 쪽으로 날아온 공을 쳐낸 탓에 제법 얼얼하게 울린다. 아무래도 8강 경기가 코앞이니 무리하는 것은 좋지 않겠지. 결국 타월을 던졌다. 그제야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감독은 교체를 허락해주고 크게 사나다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꽤나 면식이 있는 여기자가 서 있었다. 글러브를 옆구리에 끼고 부름에 달려가는 내내 사나다의 시선은 여기자를 향했다. 그의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그녀는 16강 전 인사하던 무리와 같이 아라키 감독의 곁에 서 있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무슨 소란이냐, 사나다.”

불찰이었습니다. 글러브로 토스했어요, 하하.”

웃을 정도로 멀쩡하냐? 그럼 됐고.”

건강 체크인 것인지 눈대중으로 사나다의 왼 손을 한번 살펴 본 토도로키 감독이 벤치에서 일어나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괴성이 가득 터졌다. 사인은 그의 아들인 라이치에게로 내려진 참이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란 기자가 어깨를 움츠리는 것에 빙긋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사나다는, 손바닥을 쫙 펴 그녀의 앞에서 팔랑팔랑 흔들었다. 조금은 들뜬 얼굴로다.

기자누나. 도립 오우야의 아라키 감독 명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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