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형주철 앞에 한참동안 쭈그리고 앉아있던 사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무릎을 지탱하고 있던 팔꿈치에 힘을 주었다. 이제는 미련 없이 일어나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참이다. 읏샤 일으킨 몸뚱이를 어슷하게 세우고 한 팔로 허리를 짚고 나서 다음에 대한 궁리의 뜻으로 눈동자는 왼쪽을 향했다. 그때다. 꽤나 훤한 시야였다고 생각했는데 답답한 무엇인가가 그것을 막아섰다. 아니, 정확히는 비집고 들어왔다. 8강을 단 하루를 남기고 생긴 틈이다.
“얼라….”
“너, 야쿠시의 사나다.”
교명을 앞에 붙이고 스스로가 되짚어 보는 듯 한 느낌으로의 호명은, 예의 그 아라키 이치로였다. 그 부름과 같이 좀 전 까지 창틀에 팔을 걸치고 턱을 얹어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나다가 자리에서 일어남으로써 둘의 위치는 정 반대로 바뀌어 있는 상태다. 사나다가 고지를 점했다. 허나 물리적 위치를 제외하면 그 어느 것에서도 사나다가 우위인 게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챈 사나다는 어려운 상대를 어려운 시기에 다시 만났다는 생각에 가볍게 말아 쥔 손을 입술에 댔다. 물론 꽤나 만나고 싶어 하긴 했지만, 이것은….
“안녕하십니까, 아-”
“라키 감독? 하하, 마운드 아래에서의 너는 생각보다 알기 쉽구나.”
생각보다는 무척 짧은 인터벌이다. 준비 없이 그와 마주쳤다. 더군다나 야구장이 아닌 시가지에서의 만남이라는 것은 아직 상상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 허나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 그나, 사나다나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에 생각보다는 괜찮은 그림이다. 자신의 말을 가로챈 아라키 감독에게 조금 놀란 얼굴을 보이는 것 까지 전부 포함해서 그렇다.
“물론 예상 밖의 행동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아 저는.”
눈동자를 살짝 오른쪽으로 움직였던 아라키 감독이 재빨리 사나다와 눈을 맞췄다. 그것이 워낙 순식간이었던 데다가 마지막 물음에 대한 대답이 버릇인 탓에, 사나다는 다시 발밑을 내려다본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와, 에너지가 이 안쪽으로. 이렇게 말이죠.”
손가락 두 개로 동전을 만든 다음에 아래쪽으로 쭈욱 떨어뜨리는 시늉을 한다. 그의 움직임은 온전히 각형주철로 향했다. 그랬더니 단번에 이해한 것인지 아라키 감독은 망설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만났던 내내 웃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눈이 감길 정도로 활짝 웃는 것은 처음이다. 그 탓에 설명을 이어가려던 사나다는 그것을 멈추고, 조금 놀란 얼굴로 그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엄청 유쾌하게 웃었네, 지금.’ 하지만 그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군의 최고 장수가 위기인 상태인가? 요컨대 고립무원孤立無援 정도.”
우선 최고가 아닌데, 그렇게 반박하려던 사나다는 뒤따라 나온 성어에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을 그치기 위해 얼굴을 조금 찌푸린 아라키 감독은, 의외의 제안을 툭 던졌다.
“에이스를 건져 올리는 것이 나중에 굉장한 변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나다. 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