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이변은 없었고.”

라이치의 호쾌한 타격으로 7회 콜드까지 얻어내고 부랴부랴 야구장을 나서자마자 찾아낸 대진표의 王谷에는 사선이 관통해 있다. 사나다는 애꿎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쳐 본다. 그런다고 경기결과가 뒤집힐 리 만무하기에 그의 손길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사실 그는 지금 꽤나 복잡하다. 세이도의 준결승 진출이 반가운 마음 반, 오우야의 탈락이 아쉬운 마음 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나다는 고민에 빠졌다. 패장에게 연락할 수 있는 타이밍은 언제인가는 차치하고라도 수단이 문제였다. 쇼트메일이 좋을지 원래대로 메일이 좋을지. 혹은 전화가 좋을 것인지. 사나다는 그 숫자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턱을 쓸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번호를 받아낸 것은 뜻밖의 행운이지만 또한 문자로 하렴.’하는, 쇼트메일에 대한 암시는 또한 그를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라키감독이 저에게 거리를 두는 것인지, 아니면 호의인지 영 헷갈리고 있다 이 말이다. 그것이 궁금할 만큼, 불과 며칠사이 아라키감독에 대한 사나다의 마음은 급변했다. 아라키의 여유로운 대처가 가장 큰 동인動因이었다. 오우야의 패배에서 아라키감독의 휴대폰 번호까지 생각이 흐른 것을 깨달은 사나다가 손을 멈췄다. 문득 태평하게 남의 경기 결과를 보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것을 막 알아챈 참이다. 허나 그가 그것을 알아챈다고 한들 또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앞으로 있을 경기에 대한 염려 따위의 것은 애초에 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아라키 이치로.

사나다선~~”

하얀 종이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가득 찬 것은 한참이나 아래에서 미간에 힘을 주고 있는 까무잡잡한 라이치였다. 그는 여전히 활력 넘치는 후배에 대꾸도 하지 않고 눈길만 건넸다. 그러나 역시, 사나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라이치도 내일 오전 연습은 오프래요.’라는 짤막한 말을 던지고 주먹으로 옆구리를 툭 쳤다. 도통 정상적인 대화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라이치의 말 한방에 사방팔방으로 가지 치던 사나다의 생각이 멈췄다. 그렇지만 끄덕이든 대답을 하든, 어떠한 리액션을 취해야 하는 사나다도 그와 마찬가지로 얼굴께 있던 손으로 그의 볼을 쭉 잡아당기는 것이 전부다.

오후에는 가벼운 러닝 정도만 한다는 것 같던데요?”

.”

왜요.”

집에 가.”

 

*

 

뜨악 하는 얼굴로 쳐다보던 라이치의 이마에 딱밤을 선물하고, 바삐 짐을 챙겨 모노레일을 탈 생각이었다. 곧장 내달린다 해도 메이지 진구 제 2구장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그는 이런저런 계산에는 무척 취약했다. 더욱이 마음 내키는 대로.’가 그의 생활 신조였기에 그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토도로키 라이치에게 허리춤을 잡히기 전 까지는.

양껏 먹으라는 말에 이미 충분하다는 대답을 하자, 아들과 나란히 그릇에 입을 대고 국물을 들이키던 토도로키감독이 눈썹을 들썩였다. 큰맘 먹었다는 것이 라면가게인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서도 호쾌하던 사나다의 마음이 찝찝해지기 시작한 것은 4강 확정팀에 대한 소식이 뉴스에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붙잡히고 나니 만날 리 없을 아라키감독에 대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 탓이다. 팔로 연신 눈가를 닦아내는 그의 에이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모습이라든지 차분하게 패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 감독의 얼굴이라든지. 보자마자 갑작스럽게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의 문제는, 그에게 연락을 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린 것 같다는 사실이다. 사나다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열어 몇 번이나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정신 사납게 뭐 하는 거야. 다 먹었으면 얼른 집에 가 버려!”

아하하하.”

사나다는 무심결에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저의 고민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귀가 명령이 떨어졌다. 아주 잠시간은 당황했지만 급한 마음에 예의상의 사양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겨 멨다. 덜컹 거리는 테이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접에 얼굴을 박고 음식을 흡입하고 있던 라이치의 머리를 한번 꾸욱 누르고 나서, 토도로키 감독에는 목례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순식간에 밝은 얼굴이 된 사나다의 변화만큼은 조금 눈치 챈 듯 의아하다는 얼굴로 토도로키 감독은 살짝 손을 흔들어 준다. 그에 대한, ‘고맙습니다.’라는 대꾸가 무슨 문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사나다는 가게를 나서며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고민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사나다의 손가락은 누마베예요?’하는 물음을 전송했다.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몇 분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이런. 급했네.”

해서 그는 다시 자판을 누르며 사나다입니다.’라는 문장을 완성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름을 다 쓰기도 전에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아라키감독이다. 뾰롱뾰롱 화면이 깜빡이자 사나다의 눈썹이 사정없이 구부러진다. 그것은 놀라움을 표현하는 사나다만의 버릇이었다. 사나다는 오히려 좀 전까지의 초조한 기색이 싹 가신 얼굴을 했고, 꾹 눌러 닫은 입꼬리 역시 부지런히 오른다. 단지 전화가 걸려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댄 체 누르지 않는다. 그가 연결을 결정한 것은, 전화벨이 네 번 이상 울리고 나서야다. 몇 번 소리가 터졌다는 것을 깨닫고 사나다는 얕고 긴 한숨을 내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 아라키감독. 저 사나다입니다.”

하하하. 알고 있어. 바쁘니?’

아뇨. 전혀 아닙니다.”

좀 전에 뉴스에 나오더구나. 승리 축하한다. 준결승에서 만나길 바랐는데 아쉽게 됐어.’

분명 먼저 연락을 시도했는데 갑작스럽게 판도가 바뀌었다. 패장의 축언이라니 난처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바로 앞에 서 있을 때보다 더 가깝게,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아라키의 목소리에 사나다가 또 한 번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영 어려운 사람이다. 꼴 전화선이 없어서 하릴없이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그득그득 긁는 사나다가 묵언수행을 하듯 아무 말 하지 않자 수화기 너머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사나다와는 다르게, 그는 아마 썩 시원한 얼굴로 웃음 짓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진처럼 사나다의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라키 감독, 잊기 힘든 인상이 아니다. 사나다는 곧바로 수긍했다. ‘첫눈에 반한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것. 사실 정말로의 이유는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그러지지 않는, 그럴싸한 이유라면 그게 바로 혜안이다. 복잡하게 망울을 터뜨리는 가지들 중에 가장 뚜렷하고 길게 뻗은 선을 잡아 챈 것이다.

그리고 좀 전의 쇼트메일에 대한 대답 말인데. 누마베가 아니야. 사나다군은 어디?’

아아. 저는 다치아이가와역立会川駅이요.”

순간 소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사나다의 목소리와 중첩되었기에 그는,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을 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해야 하나. 아라키와의 소통은 어렵다. 그렇지만 끊고 싶지는 않다. 가벼운 근심거리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마른 입술을 한번 부비는 데 아라키가 그런다. ‘근처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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