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였더라.”
홑꺼풀인데도 매섭지 않은 눈이 유심히 훑었으니 사나다의 머리위에는 당연히 물음표가 뜰 수밖에 없었다. 스쳐가는 한 순간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유심히였다. 어깨를 부딪쳐 놓고 웃으면서 쏘리 한 마디를 한 채, 그는 금방 팔짱을 끼고 사나다를 스쳐 지났다. 그 짧은 틈에 모자까지 벗고 ‘엇,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한 사나다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그것이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시선이 분명하게 저를 살핀 탓이다. 사실 누구였더라도 아니고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이다. 도쿄도 안에 있는 오우야 고교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헌데 사나다의 머릿속에는 그의 데이터가 없다. 원래도 눈썰미가 좋거나, 기억력이 좋은 편인 것은 아니지만은. 아무리 그래도 제법 연식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으니 바가지 머리를 한 투수가 먼저 떠오를 리가 없다. 의문부호가 꽉꽉 머릿속에 차오르는 사이 그 남자가 스쳐지나가 버린 것이다. 사실 그게 누구든, 원래라면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을, 이상하게 자꾸 떠올리려 한다. 버릇대로 엄지를 윗입술에 댄 채 곰곰이 생각해 보던 사나다는 이내 뭐야 하며 고개를 저었다.
*
16강 경기가 종료되고 나오는 길에 다시 그 남자를 발견하고서야 사나다의 의문이 풀렸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그를 향해 고개 숙이는 것을 본 직후의 일이다. 그럼 그렇지 하며 손바닥을 짝 하고 맞댔다. 아라키 이치로 그 남자는 분명 사나다와 구면이었다. 몸의 부딪침 없이 눈이 맞고 나서 불현 듯, 그것이 떠올랐다. 그다지 좋은 인연은 아닌 터라 헛웃음이 터졌다. 눈까지 맞았으니 그냥 무시하는 것은 예가 아니기에 인사를 할까 생각하며 볼을 긁적였다. 그러나 제법 멀어서 또 무시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의외로, 그는 선수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사나다를 향해 걸음을 걸었다.
“야쿠시 고교, 릴리프. 사나다 슌페이.”
인사할 타이밍을 빼앗긴 것은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전이다.
“그래도 실질적인 에이스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고.”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아라키 감독.”
“어라. 너도 날 알고 있구나?”
“얼핏 이야기 하는 걸 들었거든요. 참, 염탐은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웅성거리는 무리 속에서 그의 이름을 들은 것은 사실 조금의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능숙하지 않은 거짓말을 한 사나다의 불안정한 시선이 그의 얼굴을 떠나 발끝부터 훑어 올라올 때 까지, 아라키쪽에서 시작된 눈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짧은 순간에 느껴지는 큰 부담에 사나다는 시합을 위해 풀어두었던 맨 윗단추에 손을 댔다. 그때 또 아라키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사나다로부터 반쯤 몸을 돌렸다. 별 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로 곧이라도 그 자릴 떠날 생각인 것처럼.
“그럼 좀 더 위에서 만나자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운이 남지 않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던 찰나, 아라키가 절반 남은 몸을 멈추었다.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너의 슈트도 연구대상이었거든.”
익히 들었을 슈트, 그리고 새로이 던지기 시작한 커터도 그는 이미 알고 있다고. 도립고교의 정보와 분석은 제법 훌륭하며 만난다면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더했다. 허나 사나다에게 그의 말이 쉬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분석이라는 것은 야쿠시고교가 별로 선택하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사나다에게는.
“안…궁금했습니다만.”
정보노출을 꺼리는 편도 아닌데다가 아라키와의 대화는 별로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템포로 따라가는 것을 놓친 사나다가 난색을 표하자 아라키의 입매가 얍실하게 곡선을 그린다.
“사나다 슌페이.”
“예.”
“꼴찌?”
사나다는 곧, 쓰고 있던 모자를 끌어내려 입을 덮었다. 맙소사,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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