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다 슌페이x나루미야 메이

 

 


가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아침부터 열을 뿜어대는 길게 누운 태양 탓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조금 더 늦장을 부리려다가 손부채질 할 겨를도 없이 하라다의 미트에 엉덩이를 맞은 나루미야가 앓는 소리를 내며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부산히 손을 휘저으면서 유니폼을 찾는데, 곧은길을 두고 굳이 울퉁불퉁한 흙길로 돌아 걷던 사나다를 발견하자마자 냉큼 자리를 피할 준비를 한다. 겨우 찾은 상의를 종이처럼 구겨 손에 쥐고 나서다. 중력 방향으로 양 팔을 길게 아래로 늘어뜨린 사나다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가 다시 허리를 펼 때 까지 나루미야는 그를 주시했다.

“오늘,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한다.”

중책을 맡고 있는 탓인지 하라다는 사나다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을 넘어 가건물을 빠져나간다. 입구를 열어주었던 사나다가 빛을 등지고 서자, 나루미야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마를 짚는다. 비록 연습경기이긴 하지만 바로 몇 시간 후면 맞붙을 팀의 중추가 저의 앞을 가로막은 셈이다.

“윽, 시라카와!”

“불러봤자야. 내 뒤에 서지도 마, 별로 네 방패가 되어 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도 전력누수는 사양이다 사나다, 군? 아무튼.”

“나 이나시로에 상당히 안 달가운 손님이네.”

“응.”

“시합 전에 남의 팀 진지로 쳐들어오는 게 어디 있어?”

불만스러운 듯 입술만 씹고 있던 나루미야는 업히듯 시라카와의 등 뒤에서 한 마디 거든다. 사실은 조금 구부린 그의 등을 받침대 삼아 턱을 괸 것에 가깝다. 경계한다기보다는 관조하는 것에 가깝던 나루미야의 자세가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다. 시라카와는 무거운 나루미야를 털어내고 허리를 곧게 편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지는 않겠다는 듯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끔, 양 손을 짝 합장하고 순식간에 그 사이에서 빠진다. 가운데에 서 있던 시라카와가 한걸음 물러섰을 뿐인데 사나다와 나루미야 사이에 조금 누그러져 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 가라앉는다. 마치 서로를 독대하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냉랭한 두 사람을 잠깐 쳐다보는 것 같던 시라카와는 이내 흥미가 식은 듯 돌아선다. 미처 챙기지 못한 장비들을 매만지면서 혼자 있는 것처럼, 금세 작은 움직임만으로 경기준비에 몰입한다.

“난 쟤 잘 모른단 말이야.”

“나루미야가 그때 슌이라고 말했어.”

나루미야의 불만은 시라카와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가 아닌 곧장 들려온 사나다로부터의 대답에 나루미야가 입을 닫는다. 평온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던 눈썹이 찌푸려진다. 이상한 낌새를 안 것은 아니겠지만 때맞춰 유일하게 남아있던 시라카와가 나가고 정말로 독대를 하게 된 두 사람은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것처럼 한 쪽은 팔짱을 끼고, 한 쪽은 엄지로 턱을 매만지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다. 마운드에서 내려와서는 유독 입체적이지 않은 사나다를 배경에 묻어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마, 이른 아침 탓이기도 하고 문틈으로 뻗어있는 빛이 전날과는 다르게 충분히 촉촉하게 젖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황홀경이 펼쳐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엷은 햇살이 들어찬 탓에, 곱게 개켜진 유니폼들과 장비들이 부단히 발색한다. 그와 함께 열이 가득 올라 나루미야의 표정은 또 금방 무너지고 만다. 더위에 약하지는 않지만 숨이 막힌다는 느낌은 영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두 사람 치고는 상당히 짧게 정적이 깨진 것은 그 때문이다.

“그건 이름이니까.”

“사나다가 보통이잖아.”

“이름은 슌이고!”

“슌페이.”

“..불러서 불만이라는 거야?”

단단하게 미간에 힘을 주고 있던 사나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단호했던 표정이 금세 풀어지고 조금 경계 없는 얼굴을 한다. 그러고 나서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던 나루미야의 글러브를 양 손으로 잡더니 구부러진 공책을 펴는 사람처럼 앞뒤로 휘어본다.

“아니. 좋아, 나루미야가 슌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야. 다른 사람은 그렇게 부르지 않거든.”

“그래 영광이란 말이야, 우리처럼 안 친한데도 내가 슌이라고 불러주는 건!”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장비가 상대의 손에 들려 만져지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사나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루미야는 그러나, 그를 말리지는 않는다. 손을 뻗지 않고서 쉬이 직접적인 저지를 할 수 있을 텐데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그에 사나다는 생각보다는 섬세하게 매만지나 싶더니 전혀 익숙지 않은 동작으로 제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워본다. 일언반구의 허락이 없었는데도 나루미야는 그를 저지하지 않는다.

“그러게. 우리 안 친하지.”

어렵지 않아 왼 손? 전혀 맥락 없는 말을 뒤에 가져다 붙인 것이 굳이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을 테다. 사나다의 그 버릇을 나루미야가 익히 아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지, ‘어려우면 내가 에이스겠냐.’하고 웃고 만다. 딱 거기까지다. 그 앞의 말은 아마도 신경 쓰지 못한듯하다. 좀 전 까지는 한껏 기분 좋은 얼굴로 웃고 있던 사나다의 한쪽 눈썹이 그믐달처럼 휘어 내려앉는다. 글러브를 낀 채로 손을 두 번 쥐었다 펴고 나서 곧게 나루미야를 본다. 이미 경계태세를 풀고 입을 벌리고 있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운동장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나루미야의, 쥐고 있다가 어느새 챙겨 입고 나서 단추도 채우지 않은 하얀 유니폼이 뱅글뱅글 부유하는 바람에 날린다.

“나루미야가 저번에 미유키를 카즈야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걔는, 카즈야니까.”

“그러면, 음. 나를 슌이라고 부르지 마.”

“뭐라고.”

예상치 못했던 사나다의 말에 나루미야가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편다. 그리고 전혀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본다. 생각만큼 차이나지는 않는 키 차이 덕에 시선만 조금 불편하게 위로 향한다.

“미유키랑은 친하고, 나랑은 친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독식하겠다는 태도다. 물론 사나다의 말, 혹은 나루미야의 생각처럼 두 사람의 사이는 딱히 관계 짓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거리가 있는 터라 온전히 그런 의도를 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지 나루미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매우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불평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게다가 그건 카즛!이 아니잖아. 슌은 슌이고.”

“특별한건 안 친한 정도로 해야겠어.”

원래는 한 마디라도 할 참이었는지 숨을 들이켰던 나루미야가 사나다의 말을 듣자마자 푸슉 내뱉어버린다.

“...성격 진짜 이상하다.”

“하하하.”

내려다보면서 웃는다. 줄곧 나루미야의 갈빛 글러브를 손에 끼고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며 제 손에 길들이는 듯 하던 사나다가 글러브를 잡아당겨 빼더니 나루미야의 머리 위에 얹는다. 그러자마자 조금 말랑말랑해 진 것 같은 글러브를 머리에서부터 쭉 잡아끌어 내린 다음에 샐쭉한 표정으로 사나다를 본다. 제 품으로 돌아온 글러브를 사나다 보다는 덜, 정성스럽게 만지작거리면서다. 야생마 같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이상하고 재미없고 불편해. 근데 합은 꽤나?”

좋다. 굳이 돌려 말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어떤 것에 대한 말인지 저도 갈피를 잡지 못한 것 같은 복잡한 표정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액션이 없어도 충분할 정도로.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운 걸 거다. 나루미야는 어렴풋하게 그것을 짚어 낸 것인지 큰 기복이 없는 사나다의 얼굴을 곧게 본다. 저에 비하면 꽤나 선량한 얼굴이지만 결코 길들여지지는 않은 것 같은 인상의, 착의의, 표정의 남자다.

“어쨌든 간에. 죽인대도 슌이라고 부를 거야.”

“뭐야 나루미야. 제멋대로네.”

어떠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실로 사나다는 그에 대해 체감하는 것은 없는지 나른한 얼굴을 하고 비어버린 손으로 아까의 나루미야처럼, 손바닥으로 턱을 포개어 받친다. 덜 갖춰 입은 나루미야에 비해 모처럼 멀끔하게 맨 위엣 단추까지 단정하게 채운 사나다가 금방, 입 꼬리를 바짝 올려 웃는 얼굴을 한다. 굳이 한 발로 서서 비틀거리며, 길게 늘어진 스타킹을 양쪽 다 겨우 당겨 신은 나루미야가 대충 스파이크를 구겨 발을 꽂고 선다. 그러다가 서 있기가 영 불편한 것인지 곧장 톡톡 앞 코를 땅에다가 부딪치면서다.

“너도 마찬가지거든? 게다가 릴리프지만 확실하게 에이스는 너야. 뜯어먹을 구석도 많고.”

“난 나루미야랑 다른데. 별로 얻어갈 게 없을 거야.”

“미유키한테 들었어. 너 되게 무서운 얼굴이었다며. 시합만은, 오늘도 그렇게 부탁한다.”

말릴 틈도 없이 쪼그리고 앉아 나루미야의 구겨진 뒤 굽을 손가락으로 잡아 펴 주던 사나다가, 고개를 들어 조금 놀라는 얼굴을 한다. 그러나 사나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루미야 역시 당혹스럽다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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